[“대한항공에 주주권 행사 검토”]
수탁자책임위 검토 후 2월초 확정, 3월 주총서 스튜어드십 첫 발동할 듯
“오너일가 의혹에도 개선책 없어” 조 회장 이사 연임 반대 가능성 높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공식 검토하기로 16일 결정했다. 지난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 이후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폭행ㆍ탈세ㆍ밀수 등의 의혹이 줄줄이 제기돼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지만 개선책을 내놓지 않는 데 대한 질책이다. ‘주총 거수기’로 불렸던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ㆍ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한 후 ‘경영 참여’ 칼을 빼든 첫 사례인데,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해임을 제안하거나 연임을 반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임기는 올해 3월 17일, 한진칼(지주회사)의 회장 임기는 2020년 3월 23일까지로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 수성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 대한항공 조양호 일가 압박, 왜?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이날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이하 수탁자책임위)가 대한항공ㆍ한진칼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여부 및 범위를 검토해 보고하도록 결정했다. 수탁자책임위에는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데, 기금위는 수탁자책임위 검토 결과를 토대로 주주권행사 여부를 이르면 2월초 확정할 계획이다. 3월 대한항공·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주주권을 발동하면 첫 사례가 되는데, 국민연금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최우선 가치로 보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대한항공의 지분을 11.68% 가진 2대 주주이고,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의 지분은 7.34% 보유한 3대 주주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지난해 오너 일가의 일탈 행위로 주가가 급격히 하락했고, 대한항공 이사인 조 회장이 기내면세품 등을 구입할 때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96억원 상당의 통행료를 받아 배임ㆍ횡령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기금위 위원으로 이번 안건을 최초 제안한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임 혐의를 받는 경영진의 이사연임은 지금도 명백히 반대해야 할 사안”이라며 “불법 행위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조 회장 일가의 책임을 묻는 것은 경영권 개입이 아니라 경영을 투명화, 정상화하려는 주주 권리”라고 주장했다.
◇ 공 넘겨 받은 수탁위, 셈법 복잡
대한항공 운명을 결정할 공은 수탁자책임위에 넘겨진다. 수탁자책임위가 만약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보면 공개서한 발송, 이사선임과 재선임 반대 같은 의결권행사보다 수위가 높은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시도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현행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은 임원의 선임ㆍ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이사 해임 등의 강력한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기 쉽지 않아,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 지침상 수탁자책임위의 판단만으로도 가능한 조 회장의 이사 연임 반대 등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10%룰(단기매매차익 반환), 5%룰(지분공시의무)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에 경영참여를 하게 되면 투자 전략이 노출되거나 단기 이익을 반환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단기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오너 일가의 사적 이익을 견제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고치는 게 장기적으론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도 부담이다. 수탁자책임위가 검토한 내용은 최종적으로 기금위가 결정하는데, 기금위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은 정부 주요 부처 차관이기 때문이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일 정부의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이어지면 주주이익과 상충되고, 경우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투자자-국가 간소송(ISD)을 당해 국제소송전으로 비화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 향후 대한항공 운명은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한다 해도 직접 주주제안 같은 독자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I) 등 다른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권 행사 움직임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본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과 친족 등 최대주주 지분(28.93%)이 전체 지분의 3분의 1에 못 미친다. 2,3대 주주인 KCGI(10.81%), 국민연금(7.34%)의 지분을 합할 경우(18.15%), 차이가 10.78%포인트에 불과하다. 소액주주 지분이 49%에 달하지만 외국인(크레디스위스 지분 제외시 2.93%)이나 다른 공적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국민연금 편에 선다면 대등한 싸움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기금위 위원장인 박 장관은 “국민연금은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2020년까지는 ‘제한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어느 수준까지 경영 개입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뒤따를 수 있다. 이사 해임과 같은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6주 전까지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상대적으로 촉박하다. 대신 국민연금은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석태수 사장과 사외이사 2명(조현덕, 김종준), 윤종호 상근감사 등 한진칼 이사진 4명의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CGI나 국민연금이 당장 이번 주주총회만 보고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내년 이후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며 “KCGI 등 적극적인 주주가 내세우는 명분이 확실할 경우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하는 국민연금과 연기금, 자산운용사들도 한진그룹의 반대편에 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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