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 입고 벽에 기대앉았더니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묻어 나왔어요. 이게 뭘까 싶어 벽에 손만 슬쩍 대봐도 시멘트 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지더라고요. 이런 곳에서 떠도는 눈에 안 보이는 먼지나 미세입자들이 커피나 디저트 위에 내려앉았다고 생각하니 게 아찔했습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명소로 소개된 카페를 찾았던 직장인 김모(25)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둑어둑한 조명으로 잔뜩 멋을 부려놨지만,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부서져 나간 시멘트 벽이나 지저분한 콘크리트가 그대로 방치된 천장까지, 카페라기보단 공사장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짓다 만 듯 연출한 인테리어가 유행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이런 곳에서 먹거리를 팔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가게들을 중심으로 유행 중인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인테리어’가 도를 넘어섰다는 이용자 불만에 부딪히고 있다.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는 시멘트 덩어리나 벽돌 등을 고스란히 노출시켜 재료가 지닌 특유의 거친 질감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스타일이다. 업주들은 “요즘 인기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고객들은 “‘미완성’ 인테리어를 ‘분위기’로 포장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용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위생’과 ‘안전’이다. 멋 내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음료나 디저트를 파는 가게인 이상 쾌적한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로 꾸민 카페를 찾았던 장모(24)씨는 “한 꼬마가 넘어지다가 벽에 부딪혔는데 거친 벽면 때문에 팔이 통째 쓸리면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풀풀 날렸다”며 “이런 와중에 덮개도 없이 그대로 방치된 빵과 디저트류를 어떻게 믿고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걱정이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모(51)씨는 “노출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마감처리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위, 아래층에서 충격이 생길 시 천장에서 먼지나 가루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이 쿵쿵 울릴 정도의 큰 충격만 말하는 게 아니다. 근처 차량통행만으로도 영향이 있다.
이런 불만은 동종업계인 카페 업주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지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모(33)씨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본래 유럽에서 시작됐는데 카페나 식당보다는 사무실, 전시장에 주로 활용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선 그저 인테리어 비용을 줄이기 위한 꼼수로 변질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카페 창업자들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인테리어 비용이다. 권리금이나 임대료는 정해져 있고, 재료비나 운영비 등엔 손대기 쉽지 않아서다. 인테리어 업자 한모(27)씨는 “카페 프로젝트가 들어와 견적을 내면 사장들은 제일 먼저 고급마감재를 하급마감재로 바꾸거나, 아예 마감처리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자금력이 부족한 2030세대들이 너도 나도 카페를 열면서 더 커졌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6월 서울 용산에 카페를 개업한 조모(24)씨는 “연면적 50m²짜리 조그만 카페 하나 여는데도 예산의 절반 이상이 인테리어 비용이었다”며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유행의 속내는 ‘비용 절감’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 참에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축 설계사는 “설계 때부터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염두에 둔 건물들은 오히려 거푸집도 더 매끈하게 만들고 노출콘크리트 전용 레미콘을 써서 마감을 훨씬 깨끗하게 한다”며 “시멘트 가루나 돌 조각들이 풀풀 날리는 인테리어는 엄밀히 말해 인더스트리얼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카페 등 음식점 관리는 관할 구청의 몫이다. 하지만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 증빙서류만 내면 끝이다. 식품위생법상 시설기준이 있지만 이 기준은 소방시설 등 안전에 관한 규정이 대부분이다. 한 구청 위생과 관계자는 “영업장 현장점검도 가능하지만 그 또한 조리장, 급수 시설, 화장실 등 필수설비를 확인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민원이 있으면 위생점검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 외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