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던 고 김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
“배운 건 많지 않아도 누구보다 똑똑하고 당당한 사람.”
지난 29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전날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옥선(89) 할머니는 “키는 조그만데도 자기 할말은 다 하는 사람”이라며 치켜세웠고, 강일출(91) 할머니는 “역사 문제를 함께 토론하던 동료”라고 기억했다.
김 할머니는 1993년 유엔 세계인권대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변해 온 인권운동가였다. 위안부 현안마다 쏟아낸 김 할머니의 호소와 호통 속에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1,000번째 수요집회에서 김 할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일본 정부에 고하라. 일본은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 빨리 사죄하라고. 알겠는가, 대사!”
27년에 걸친 오랜 싸움 동안 김 할머니의 소원은 오로지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12ㆍ28 한ㆍ일 위안부합의 이후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내놓은 위로금을 지급하려 할 때도 그랬다. 2016년 8월 26일 기자회견에서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사죄하기 전엔 돈을 받을 수 없다. 1억원이 아니라 100억원, 1,000억원을 줘도 받을 수 없다”고 부르짖었다.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은폐, 축소하려는 일본 고위관료들에게도 김 할머니는 거침이 없었다. 김 할머니는 2012년 8월 29일 1,037번째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은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향해 “증거가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 이 할머니가 죽기 전에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 못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정부도 김 할머니의 서슬 퍼런 호통을 피해가지 못했다. 2014년 6월 17일에는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위안부 문제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 등의 망언을 한 당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비판하며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김 할머니는 “국무총리 후보 사퇴도 하나님 덕으로 생각하고 청문회 이전에 물러나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자기 편에서만 총리 후보를 고르려고 하다 보니 이런 후보를 내세웠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꾸짖었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죄만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과거의 고통과 치욕에서 해방되는 길이라 여겼다. 생전 마지막 광복절이었던 지난해 8월에도 김 할머니는 다시 해방을 외쳤다. “아직 우리는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만 우리는 해방됩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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