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엔 강준상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SKY 캐슬’을 마친 뒤에야 정준호가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20년 전 MBC ‘안녕 내 사랑’으로 인연을 맺었던 조현탁 감독의 제안으로 받아들었던 ‘프린세스 메이커’의 대본. 정준호가 느꼈던 첫 인상은 ‘내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였다.
“처음 대본을 읽고 ‘이건 여자 드라마인데’라는 느낌과 함께 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여자 캐릭터들의 서브 인물인 강준상이 독특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죠.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중심이 되는 한서진이라는 인물과 강준상의 가정에서 펼쳐질 사건들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여자 드라마 속 아버지와 남편 정도의 역할 이상의 매력은 못 느꼈거든요. 그렇지만 감독님을 뵀을 때 제게 ‘중심을 잡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눈빛에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이 작품에 대한 플랜이 정확하다는 자신감을 느꼈죠. 강준상이라는 캐릭터를 쭉 설명해주시는데 공감이 갔고, 이해가 돼서 믿음 속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조현탁 감독과 ‘SKY 캐슬’, 그리고 강준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준호의 믿음은 정확히 통했다. 첫 회 1.7%라는 다소 아쉬운 시청률로 출발했던 ‘SKY 캐슬’은 2회부터 시청률 급상승을 기록하며 최종회 23.8%를 기록, 신드롬 급 인기 속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정준호는 이 같은 드라마의 인기에 대한 감사함과 감동을 전했다.
“‘스카이 캐슬’이 사랑을 받은 요인 중 하나가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는 점 같아요. 진짜 바닥에서 어렵고 힘들게 시작해서 정상까지 가는, 이 경로를 극적으로 이뤄냄에 따라서 울컥 하는 감정이 나온 거죠. 만약 저희 작품이 첫 방송에 5% 정도 나왔으면 이렇게 폭발력이 증가했을까 싶기도 해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시청률로 시작했는데 정말 극적으로 말도 안 되게 시청률이 수직상승했고, 그 부분에 열광해 주신 것 같아요. 또 ‘대체 뭐길래 관심을 가지고 보지?’ 하면서 또 보시게 되면서 응축된 힘이 증폭 되면서 ‘이건 봐야 하는 거구나’로 귀결됐던 것 같아요. ‘시청률 20%가 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 모두가 장식하고 응원해줘야겠구나’ 하는 우리나라의 똘똘 뭉친 국민성마저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역대급 시청률뿐만 아니라 정준호 본인에게도 남긴 것이 많은 작품이었다. 특히 슬하에 6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교육관의 변화도 겪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도 아내가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저도 아들이 3~4살일 때부터 책도 많이 읽어주고 자기 전에 구연동화도 실제로 해주면서 친밀한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이가 아빠의 영향을 자꾸 받으니까 노력하려고 하죠. 그럼에도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소리가 자식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고, 주입식의 ‘1등 주의’를 보며 ‘나는 절대 이렇게 키우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반면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지켜보면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주면 아이가 방황하지 않고 집중해서 갈 수 있겠다는 점은 취해야 할 점이라고 느끼기도 했고요.”
1995년 데뷔 이후 25년 만에 또 한 번 ‘인생작을 경신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뜨거운 사랑을 받은 정준호. 압도적인 감정연기로 후반부를 ‘하드캐리’ 했던 그이지만, 정준호는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고 말했다.
“(작품을) 하고 나면 연기자로서 아쉬운 부분들이 많아요. 선배님들께서 늘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또 연기를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노하우와 경력과 노력을 통해 연기의 성취가 얻어지는데, 저 역시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은 각방을 썼어요. 저는 새벽에 대본을 봐야 집중을 잘하는 성격이라 새벽 시간대에 집중해서 대본 공부를 하기 위해 각방을 쓸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었죠.”
각방을 썼던 기간이 무색하게 정준호와 이하정 부부는 최근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하며 세간의 축하를 받았다. 기다리던 둘째 소식에 정준호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둘째 계획을 오래 전부터 했었어요.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제가 같이 돌아다니면서 전국에서 좋다는 한약, 좋다는 음식을 많이 해 먹이면서 같이 준비를 해 왔었죠. 그렇게 몇 년 준비한 끝에 어렵게 둘째를 가졌어요. 아내도 그렇고 저도 아이 욕심이 많아서 더 낳고 싶지만, 아내 건강이 먼저니까요. 그래도 올해가 황금 돼지띠라 계획을 잘 세워서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웃음)”
작품의 성공부터 반가운 둘째 소식까지. 겹경사로 2019년을 연 정준호에게 올해는 이미 ‘잊을 수 없는 해’가 됐다. 남은 한 해를 더욱 의미있게 채워 나갈 정준호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올해는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해인 것 같아요. 연기자들에게도 인생을 살면서 이런 기회가 많이 오지 않는데,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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