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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서로 설득 자신했지만… 끝내 남은 빈칸 못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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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서로 설득 자신했지만… 끝내 남은 빈칸 못 채워

입력
2019.03.02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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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회견으로 본 하노이 협상 재구성]

영변 폐기 공감대, 제재 완화도 의제… 충분한 의견 교환 흔적

제2차 북미정상회담 첫날인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해 악수를 하고 있다. 백악관 트위터 캡처
제2차 북미정상회담 첫날인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해 악수를 하고 있다. 백악관 트위터 캡처

북미 정상이 합의하지 못한 ‘합의문’에는 스웨덴 스톡홀름, 북한 평양, 베트남 하노이를 오가며 수차례 걸쳐 이뤄진 실무 협상진의 충분한 의견 교환 흔적이 곳곳에 녹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차 정상회담 날짜를 잡아두고 시작한 실무 협상에서 ‘빈칸’을 모두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실무 수준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했으나 정상 간 담판으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양국의 오판, 그로 인한 막판 실무 회담의 공백은 결국 ‘빈손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28일 회담 결렬 직후 가진 기자회견과 10시간 뒤인 다음 날 새벽 기습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의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미 두 정상이 만나기 전 실무 선에서 마련된 합의문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가 원하면 100% 서명할 수 있었다. 합의문도 있었다. 근데 준비가 안 됐다고 봤다. 서두르기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고, 리 외무상은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밝혔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실무 수준에서 만든 합의문 1안 외에 두 정상이 ‘통 큰 결단’을 내릴 경우 성안될 합의문 2안이 존재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 간 실무 협상을 통해 거의 빈칸 없이 채워진 합의서와, 북미 각자가 원하는 플러스 알파(+α)를 담기 위한, 미완성 합의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정상은 우선 27일 친교 만찬을 통해 서로의 속내를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260일 만에 대좌하는 만큼, 성대하리라 여겨졌던 만찬은 그러나 전채요리, 주요리, 디저트로 간소하게 구성됐다. 친교 형태의 만찬이었던 만큼 김 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배석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북핵 문제 최고 전문가인 리 외무상이었다. 친교 만찬이라고 포장은 했으나, 실무 수준에서 채우지 못한 빈칸을 채우기 위한 자리로서의 성격이 강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이유다. 만찬 전후로 우리 정부의 관계자들도 “아직 합의문을 완성한 단계는 아니다”고 분위기를 전해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회담 전 모두발언을 통해 “합의를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솔직한 대화를 나눴고 (김 위원장과) 훌륭한 만찬을 함께 했다. 만찬을 전후해 중요한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뒤집어보면 전날 두 정상은 실무진이 남겨둔 빈칸에 대한 답변을 ‘다음 날 주고 받자’고 얘기했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정상회담 직전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여겨졌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간 만남도 두 정상이 하노이에 입성하기 하루 전인 25일 사실상 종료됐다. 실무 협상이 예상보다 일찍 종료되기는 했지만, 1월 스톡홀름에서 최선희 부상, 비건 대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회동에 이어 지난달 비건 대표가 평양 방문을 하며 북미가 나름대로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파악한 만큼, 북미 정상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상대를 직접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결국 ‘노 딜’ 협상으로 끝났다.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 결렬 가능성도 대비했다”고 28일 필리핀행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밝힌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는 회담 결렬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 적지 않았다. “오늘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핵 협상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회담이 결렬에까지 이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 보였다. 그는 단독회담을 시작하며 “우리에게는 시간이 중요한데”, “충분한 이야기를 더 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1분이라도 소중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정상이 결국 빈손으로 하노이를 떠나게 됐지만, 실무 선에서 합의된 것도 작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영변 핵 시설 폐기를 테이블에 올리는 데는 북미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이 북미 양측의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났다.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이 ‘미 전문가들 입회 하에 영구 폐기하는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동의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준비 돼 있다”고 답했다.

다만 영변 핵 시설 폐기가 일괄 해체인지, 단계적 해체인지는 불분명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영변 핵 시설과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았다”고 했고, 북측도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어느 시점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뚜렷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전면적인 제재 완화 요구’를 회담 결렬 사유로 들긴 했지만, 제재 완화도 주요 의제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앞장선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하는 모양새를 만들 수 없었던 만큼, 합의문에 직접 명시하기보단 ‘남북 협력 관계를 지원한다’와 같은 우회로를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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