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낡은 것이 희망이 된 영주 옛 도심
영주는 철도도시다. 중앙선(청량리~경주) 영동선(영주~강릉) 경북선(영주~김천)이 영주역을 기점으로 삼거나 관통한다. 9개 시ㆍ군을 관할하는 코레일 경북본부도 영주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영주는 인구 10만 남짓한 전형적인 소도시에 머물러 있다. 영주역이 처음 개설된 게 1942년이지만 화려한 날은 지속되지 못하고 주변은 세월의 먼지가 켜켜이 싸여 갔다.
◇낡은 것들에 생기를…중앙시장과 후생시장
어느 지역이든 ‘중앙’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관공서와 사람이 몰리는 한 도시의 중심이다. 영주중앙시장에 대한 첫 인상은 그러나 활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서지는 봄 햇살에 시장 간판은 실제보다 낡아 보이고 통로는 어두컴컴하다.
중앙시장이 개장한 것은 1982년, 이미 중심지의 기능을 상실해 가던 시절이었다. 영주역은 1973년, 시청은 1980년 각각 현재의 휴천동으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중앙시장은 영주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현재 역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슬쩍 휘어진 시장 통로가 바로 열차가 다니던 선로였다.
일찌감치 옛 도심으로 전락한 중앙시장은 2017년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건물 중앙으로 들어서면 반전의 공간이 나타난다.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만든 직사각형의 넓은 광장이다. 거리 공연과 노천 카페가 없을 뿐,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럽 소도시의 광장과 비슷하다. 1층 상가에는 공예업체들이 들어섰고, 2층은 깔끔한 주거지로 정돈했다. 옥상에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멋을 더했다. 그러나 활용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따금씩 치맥 파티와 벼룩시장이 열릴 뿐 평시에는 텅텅 비어 있다. 역전(驛前)에 역전(逆轉)은 여전히 희망사항이다.
중앙시장 바로 인근 후생시장도 1940~50년대에 형성된 낡은 상가 49채를 한옥으로 단장했다. 그 중심에 ‘소백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소백여관’이 자리 잡았다.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온 정한나씨는 숙소가 어떠냐는 질문에 “따뜻하게 잘 잤다”고 대답했다. 방 안 온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스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여관과 붙은 ‘응답하라 1955’는 투숙객에게 가벼운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이자 쉼터다. 토스트와 커피 향이 풍기는 아늑한 공간에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스민다. 배경으로 ‘영주에프엠(FM) 방송’의 음악이 잔잔하게 깔린다. ‘영주 FM’은 전국 6곳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출력 지역공동체 라디오다. 여관 바로 앞에 체험 공간으로 ‘황금시대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옆 ‘빨강인형극장’은 공연이 열릴 때마다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평상시에는 ‘다자구야 들자구야’ 인형이 무대를 지키고 있다. 소백산 죽령의 산적을 퇴치한 할머니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극장 이름인 ‘빨강’은 잘 익은 고추를 상징한다. 후생시장은 한때 전국 최대 고추시장이었다. 아직도 일부 건물에선 산더미처럼 고추를 쌓아놓고 꼬투리 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삶이 익으면 문화가 된다…영주의 대표 7080세대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은 낡은 건물을 새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중앙시장에서 도로를 하나 건너면 ‘구성마을’이다. 철도에 의지해 몰려들었던 노동자들이 형성한 동네로 인근 거북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70~80대, 경로당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나이지만 구성마을 노인들은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마을회관에서 윷놀이로 소일하던 ‘7080’ 할머니 16명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할매묵공장’을 차렸다. ‘할매 손맛’이 밴 묵과 두부가 인기를 끌면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묵 공장이 일터이자 쉼터고 놀이터다. 공장에서 가장 젊은 권분자(70) 이사는 실제 수익을 나누면 용돈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10%는 음식 봉사에 쓴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두부와 묵 맛에 반해 공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현재 간단한 시식과 체험장도 준비 중이다. 공장 바로 앞 ‘구성공원’은 도심 속 허파 같은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꼭대기에 오르면 옛 도심이 사방으로 내려다보인다.
영주역 뒤편 영주대장간은 요즘 영주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대장장이 석노기(65)씨가 만든 호미가 세계적 인터넷몰 ‘아마존’과 ‘이베이’를 통해 소위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뭔지 인터넷몰이 뭔지 알 리 없는 석씨를 대신해 호미를 판매한 업체는 지역의 농자재 전문점 ‘헬프팜’이었다. 지난해 해외에 납품한 호미가 대략 2,000개, 올해는 그보다 많은 3,000개가량을 예상하고 있다. 시골 대장간에서 만든 농기구가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지만, 호미 한 자루 가격이 5,000~6,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수익은 크지 않다. 불구덩이에서 쇠를 달구고, 일일이 두들겨 모양을 잡아야 하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치고는 오히려 작은 편이다.
영주대장간의 성공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석씨는 고향 논산에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16세 때부터 대장간 일을 익혔다. 65년 인생에서 50년간 쇠를 두들긴 것이다. 스물셋 이른 나이에 영주에서 개업한 그의 공장 한편에는 아직도 당시 설치한 단조 해머가 유물처럼 놓여 있다. 유명세를 탄 요즘도 대장간의 주요 고객은 농민이다. 가격을 무작정 올릴 수 없는 이유다. 호미는 기본이고 낫, 괭이, 쇠스랑 등을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만든다. 요즘은 전화 주문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외면할 수 없어 택배로 보내는데, 가욋일이다 보니 주소를 잘못 써서 반송 택배비를 무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래도 평생 해 온 일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자부심도 커요.” 진짜 ‘대박’은 돈이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다.
영광중학교 앞 ‘영광이발관’ 이종수(74)씨도 50년간 이발관을 운영해 온 터줏대감이다. 2층 적산가옥 아래층에 자리 잡은 이발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옛날 이발관 특유의 비누 향이 짙게 풍긴다. 내부엔 의자 둘이 고작인데, 거울과 거울 사이 벽면을 가득 채운 염색 약에는 빠짐없이 이름이 적혀 있다. 모두가 미용실로 발길을 돌리는 요즘에도 사랑방처럼 이발관을 찾아주는 든든한 단골들이다. “손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고, 이 나이에 쉬면 뭐해?” 평생 머리 다듬는 일을 해온 그는 요즘 바리캉, 양손기계, 면도날을 벼리는 피대 등 옛날 도구들을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이발관 변천사를 보여 줄 ‘작은 전시실’을 꾸미는 것이다.
일부 적산가옥과 오래된 건물을 포함해 영주동 일대가 지난해 목포처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철도 관사가 밀집한 ‘관사골’, 이석간 고택, 영주제일교회, 풍국정미소 등이 포함됐다. 아직은 관광지로 추천하기 부적당하지만 그 낡음에 어떤 이야기를 입힐 지 기대된다.
◇영주 여행 정보
▦서울 청량리역에서 영주역까지 하루 10회 열차가 운행한다.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고속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시간당 2~3회 운행한다. 2시간 30분이 걸린다.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풍기IC나 영주IC를 이용하면 된다.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는 도로변에 전국에 체인점을 거느린 ‘정도너츠’ 본사가 있다. 카페 형식의 매장을 갖추고 있어 영주 특유의 생강도넛, 인삼도넛, 사과도넛 등을 맛볼 수 있다. 후생시장의 ‘선비골 인삼사과빵’ 가게도 영주 농산물을 활용한 인삼빵, 사과빵, 고구마빵을 판매한다. 영주시내 ‘나드리분식’과 ‘중앙분식’은 쫄면 식당으로 유명하다. 특히 영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출향인들이 옛 맛을 잊지 못해 즐겨 찾는다.
영주=글ㆍ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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