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주류는 메이 총리 사퇴종용… 임시 총리로 브렉시트 강행 의사
말만 많고 해결책을 못 찾는 영국 정치권의 지리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쟁에 영국 젊은이들이 폭발했다. 분노한 20~30대 시민들이 런던 시내로 쏟아져 나와 브렉시트 철회를 요구했고, 동조 청원에 서명한 사람도 5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무조건적인 브렉시트를 요구하는 보수당 일부 세력은 타협 성향의 테리사 메이 총리에 대한 반란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잔류를 원하는 젊은 세대와 ‘브렉시트’를 과거 대영제국의 위상 회복으로 생각하는 수구ㆍ보수 진영의 정면 충돌이 본격화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BBC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런던 의회 건물 앞으로 “민중에게 결정권을” 이라는 구호 아래 손에 EU 깃발을 들고 얼굴에 EU의 상징색인 파란 색과 노란 색 페이스페인팅을 한 군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세기 들어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 외신들은 수십만 명이 운집했다고 전했다. 시위대 측은 100만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브렉시트 취소 청원도 500만여명을 넘겼다. 영국 의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청원이다. 이전 기록 역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2016년 청원이었다. 영국 의회는 1만명 이상 청원에 대해서는 답변을 해야 하고, 10만명 이상 청원은 의회 토론을 고려할 수 있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는 영국이 EU에 가입한 1993년 이후 출생자들이 주류였다. 소피 래섬(22)은 “브렉시트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적 뉴스들이 퍼지는 것에 대한 분노한다”고 BBC에 말했다. 2016년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청소년도 반대 시위에 합류했다. 오로르 미드(14)는 “(브렉시트 결정이) 내 미래와 인생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시위 참여 이유를 밝혔다. 생애 대다수를 EU 소속으로 지내왔기에 유럽에 대한 소속감이 앞선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투표에서 찬성 의사가 더 컸던 중장년층에서도 불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로브 워시(62)는 “이 나라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참여했다”며 “내 자식과 손자ㆍ손녀들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교착 상태인 의회가 투표권자들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기라는 주장이다. 지난 선거에서 브렉시트 찬성에 투표했다고 밝힌 에마 너키(38)도 “지난 투표는 실수였다”며 브렉시트 지지 철회 의사를 밝혔다. 찬성파 사이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차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브렉시트가 무산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치인들도 숟가락을 얹었다. 톰 왓슨 노동당 부대표는 “총리, 당신은 이 과정에서 통제권을 잃었다”고 메이 총리를 공격하고 나섰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과 사디크 칸 런던 시장, 보수당을 탈당해 ‘독립 그룹’에 속한 애나 소브리 의원과 도미니크 그리브 전 법무장관도 시위대 속에서 함께 했다.
젊은 계층의 반대 움직임에도 불구, 보수당 주류에서는 브렉시트에 소극적인 메이 총리를 몰아내고 다음달 무조건 EU에서 벗어나려는 반란 조짐까지 엿보이고 있다. 영국의 더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내각 각료들이 메이 총리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선데이타임스의 팀 시프먼 정치 에디터는 “메이 총리를 몰아내기 위한 내각의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익명의 내각 각료를 인용해 “끝이 가깝다. 그녀는 10일 안에 떠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실상의 부총리 역할을 하는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이 임시 총리로 유력하며, 일부는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이나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을 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이들은 리딩턴 실장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만, 하드 브렉시트파에서는 그의 타협 가능성을 우려해 강경파인 고브 환경장관을 강력하게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EU 사이에 일단 4월12일까지 미룬다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협상을 모색해온 중도파가 사실상 와해된 가운데 브렉시트 논쟁이 ‘전격 철회’와 ‘전격 결행’이라는 극단 선택만을 놓고 보수세력과 청년층의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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