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중심가에선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알몸이던 헤르메스 동상이 바지를 입고 있더니 며칠 뒤 다시 벗은 것이다. 관계 당국도, 근처에서 장사하던 상인들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른다고 했다. 헤르메스가 옷을 입고 벗는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설왕설래만 오갔다. “동양의 규범이다” “원형을 훼손했다”는 논박은 급기야 음모론으로 나아갔다. 자카르타에 있는 나신상이 옷을 입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다.
사건은 지난달 15일 벌어졌다. 자카르타 감비르 지역 하모니다리에 설치된 2m 크기 헤르메스 나신상에 연한 갈색과 녹색의 낡은 천이 바지처럼 입혀졌다. 해당 지역은 시 중심가에 위치해 왕래가 잦은 곳이다. 헤르메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령의 신’으로 조각상과 회화에서 주로 벌거벗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다. 바지를 입은 헤르메스 동상을 찍은 사진이 유포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의심의 눈길이 쏠리자 시 당국은 즉각 “지시를 받은 적도, 천을 직접 두른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이틀 뒤인 지난달 17일 헤르메스는 예전처럼 알몸으로 돌아왔다. 동상 주변 노점상 안디씨는 “2m 높이의 동상 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주요 부위가 가려져 있었는지 아닌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라며 “누가 그 헝겊조각을 가져갔는지 모르겠다”고 자카르타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동상이 원래대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다시 의혹을 제기했다. 전략적으로 도심에 있는 나체상들에 옷을 입히려다 문제가 되자 뜻을 접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장난질일 것이란 추측도 나돈다.
따지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 자카르타 시민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올 초 ‘황금 브래지어 인어상’ 사건을 떠올려서다. 이 사건은 북부 자카르타 해안에 위치한 자카르타 대표 위락 시설 안쫄 유원지의 정문과 로비에 있던 나신 인어상 두 개에 황금색 천으로 가슴 부위를 두른 일을 가리킨다. 일부 시민들이 비난하자, 유원지 운영업체는 “동양의 규범에 맞추고, 동상을 더 아름답게 꾸미려는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외압설에 대해서도 “가족친화적인 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작년에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나신상에 옷을 입히는 행위가 긁어 부스럼이라는 부정 여론이 대세지만, 옹호론도 있다. 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판(27)씨는 “별일 아니다, 동상 자체를 망가뜨린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티아(25)씨는 “종교(이슬람교)를 핑계로 노출을 불편하게 여기는 편견이 여전하고, 예술적 의도가 훼손된 동상 제작자들에겐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라면서도 “사실 옷을 입은 사진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에선 일상적으로 노출을 꺼리는 편이지만, 속옷가게에 가면 낯뜨거울 정도의 속옷들이 즐비한 게 현실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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