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대혼란과 지방선거 참패에다 국방장관 해임 논란까지 겹쳤다. 특히 유력 총리후보로 거론돼온 국방장관 경질과 당사자의 반발로 권력투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는 5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 메이 총리가 최근 개빈 월리엄스 국방장관을 경질한 이유에 대해 “윌리엄스 전 장관이 사적인 자리에서 메이 총리의 당뇨병을 거론하며 총리직 수행이 부적절하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일 총리실이 국방장관 경질을 발표하면서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사업과 관련한 국가안보회의(NSC) 논의 내용 유출을 이유로 삼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 영국 경찰은 윌리엄스 전 장관의 정보 유출 혐의를 조사한 결과 공무상비밀보호법에 저촉되는 중요 정보가 없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23일 메이 총리 주재 NSC 회의에서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화웨이(華爲) 제품 사용 여부를 논의한 결과가 이튿날 언론에 보도됐고 이후 윌리엄스 장관은 정보 누설자로 지목돼 해임됐다.
이와 관련, 윌리엄스 전 장관은 자신의 경질을 “낡고 신빙성 없는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며 메이 총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그는 사법기관에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향후 법적 분쟁에 대비해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메이 총리의 경질 결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양측의 충돌이 주목되는 건 윌리엄스 전 장관이 유력한 차기 총리로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자신의 병력을 거론하며 총리직 수행 능력을 문제삼은 윌리엄스 전 장관에게 ‘꽤심죄’를 적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남중국해 영유권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대한 군사적 개입 등 월리엄스 전 장관의 확장적 대외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윌리엄스 전 장관이 공문서에 자신을 ‘빌어먹을 총리’라고 휘갈겨 쓴 사실을 보고받기도 했다.
윌리엄스 장관이 법적 대응을 시작하면 이번 경질 파문은 진실 공방으로 흐르면서 정치권 내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화할 개연성이 크다. 브렉시트 혼란이 계속되고 있고 지난 2일 지방선거에서 집권지역을 44곳이나 잃으면서 집권당 내 본격적인 사퇴 요구에 직면함으로써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메이 총리로서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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