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5> 동티베트① 청성산과 쓰구냥산
중국 쓰촨성 서쪽을 동티베트라 부르기도 한다. 티베트 문화가 산재하기에 그렇다. 지난해 6월 중순, 청두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1주일 동안 발품 기행을 다녔다. 두장옌에 있는 청성산, 샤오진의 쓰구냥산, 단바의 티베트 전통 마을, 타궁초원을 지나 신두챠오와 캉딩 그리고 상리고진까지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동티베트 전체로 보면 아주 일부다. 이국적인 티베트 문화와 아름다운 풍경이 줄줄이 등장한다. 4편으로 나누어 동티베트를 소개한다.
쓰촨성 청두에서 1시간30분이면 두장옌에 위치한 청성산(青城山)에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대 도교 명산이다. 예로부터 촉나라 영역이다. 서촉제일산(西蜀第一山) 패방을 지나 청성산 산문에 이른다. 지붕 위에 오어와 용이 불을 뿜는 모습이나 도인을 연상하는 조형물이 신비로운 분위기다. 도교의 성지답게 강렬한 인상을 내뿜는다.
최초의 도사인 조천사(祖天師) 장릉이 말년에 거주하고 우화한 산이다. 우화는 불교의 열반처럼 우아한 존칭이다. 삼국지나 후한서에 따르면 종교로서의 도교는 장릉이 창시했다. 최고학부 출신으로 역사를 고증하던 학자이자 도덕경의 최고 권위자였다. 높은 관직도 사양하고 전국을 주유하며 포교하다가 말년에 청성산에 이르렀다.
호수를 지나 케이블카를 타고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자운각이다. 국태민안(国泰民安)과 보도중생(普度眾生) 편액이 나란히 걸렸다. 공자 사당이나 불교 사찰에서 등장할만한 용어다. 도교는 유불선 통합의 기준이자 포용, 포섭에 능통한 종교다. 불교의 팔보가 도교에도 있다. 자운각 아래 부분에 내공 높은 도사들인 팔선(八仙)이 들고 다닌 보물이 조각돼 있다. ‘여동빈은 보검’, ‘종리권은 부채’ 등이다. 팔보를 보고 팔선을 연상하려면 도교에 대한 지식이 좀 필요하다.
왼쪽의 토지사(土地祠)는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뱀을 움켜쥔 오른쪽 진산왕(鎮山王)은 낯설다. 주나라 시대의 제도를 설명한 ‘주례’에 악전해독(岳鎮海瀆)이란 기록이 있다. 고대 선민의 자연숭배 관념이다. 천하의 산천을 오악과 오진, 사해와 사독으로 나눠 제사를 지냈다. 오악은 하늘이자 황권이고 오진은 땅이자 왕권을 상징한다. 오악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오진도 동서남북과 중앙에 위치한 명산이다. 진산왕이 토지신과 나란히 배치된 이유가 조금 이해가 된다.
곧이어 나타나는 상청궁(上清宫) 편액은 1940년 장제스의 필체다. 4세기 전후 진나라 때 처음 건축됐으며 중건을 거듭해 청나라 후기인 1870년대에 지금 형태를 갖췄다. 노군전, 삼청대전, 문무전, 도덕경당, 옥황전이 상청궁을 구성하고 있다. 도관의 최상위에 위치한 삼청은 ‘도’라는 관념 자체를 구현하고 신격화한 옥청, 상청, 태청이다. 모두 천존(天尊)이라 존칭하는데 각각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이다. 구체적으로 신도의 눈앞에 있어야 믿을지니, 전각에 나란히 봉공을 한다.
도교의 신이 된 노자는 오랫동안 태청도덕천존으로 지냈다. 친숙하게 태상노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뛰어난 사상가이자 도덕경의 저자이지만 단 한 번도 무덤에서 뛰쳐나와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문무전에 안치된 공자와 관우보다 서열이 높아서일까? 상청궁 안 삼청대전에 나란히 삼청이 앉았다. 약간 떨어진 지점에 옥청궁도 따로 위치한다. 정상에는 태청궁과 다름없는 노군각이 있다. 삼청은 청성산에 각각의 궁궐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상청궁 옆에는 뜻밖에 놀라운 인물이 살았다. ‘동방의 붓’, ‘500년 만에 나타난 천재 화가’라는 극찬을 받는 장다첸이다. 1938년 일제의 압박을 피해 청성산에서 3년을 숨어 살았다. 1941년 둔황으로 간 장다첸은 막고굴의 벽화를 모사한 이후에 다시 청성산으로 돌아와 거주했다. 당대 산수화의 대가이자 막고굴의 ‘기적’을 그린 장다첸은 당연히 청성산을 그린 작품집도 남겼다.
상청궁을 지나 해발 1,260m 최고봉을 오르는 길에 태상노군의 거처인 대적천궁이 있다. 지붕의 태극 문양이 유난히 빨갛다. 검은색 팔괘 사이의 경계와 태극의 반이 붉어 눈에 금방 들어온다. 장릉이 전파한 도교의 정일파 또는 전진도를 발전시킨 도사가 많다. 남과 북에 각각 다섯 명이 유명하다. 북조사 중 첫째인 왕현보, 즉 동화제군(東華帝君)을 봉공하는 동화각이 노군각 바로 밑에 있다.
노군각은 33m 높이의 8면 9층 전각이다. 2008년 5월 12일 원촨 대지진 후에 중건했다. 7만명이 사망하고 38만명이 다친 대지진이 청성산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원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정상은 시야도 팔방으로 뚫렸다. 거센 바람에 향불이 온전하게 남아나지 않는다. 근엄하면서도 해학적인 태상노군의 미소는 친근하다. 노군각 주변은 보수 공사를 하는지 소란스럽다.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는 말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문학가 라오서는 수필 ‘꿈꾸는 집’에서 1년 4계절마다 살고 싶은 지방을 자랑했다. 봄은 항저우, 가을은 베이징, 겨울은 청두나 쿤밍에서 살고 싶다 하고 여름은 청성산을 딱 꼽았다. “겨우 10일 살았지만, 고요한 분위기는 영혼을 사로잡았고 풍성한 자연은 언제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신선과 함께 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흠모했다. 이제 도교 발상지이자 중원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청성산을 떠나 티베트 문화권으로 향해 간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2시간 달려 판다가 많은 워룽에 이르니 ‘동방의 성산’이라 불리는 쓰구냥산(四姑娘山) 표지판이 보인다. 산길을 오르자마자 비가 내린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은 그만큼 해발이 높아간다는 말이다. 빗길은 점점 눈길로 변한다. 1시간 가까이 험로를 헤치고 파랑산(巴郎山) 야커우(垭口)에 멈춘다.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해발이 무려 4,481m다.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차에서 내리니 소스라치게 추운 영하의 날씨다. 산 아래보다 25도 급강하, 정말 급상승으로 고개에 이르렀다. 어둠이 따라오는 하산길은 사방을 환하게 비추는 눈이 쌓였어도 매우 조심스럽다.
쓰구냥산 장평구 부근 객잔촌에 짐을 풀었다. 티베트 문양과 야크, 탕카(티베트 전통 불화)와 함께 배낭족의 메모, 등산 지도가 명산에 온 느낌을 풍기는 창양객잔(仓央客栈)이다. 저녁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야 6세 달라이라마의 이름과 같은 객잔임을 알게 됐다. 정치적 문제로 청년이 되고 나서야 달라이라마에 오른 창양갸초(仓央嘉措, ཚངས་དབྱངས་རྒྱ་མཚོ།)는 시인이기도 했다. 청순한 아가씨와의 인연을 시로 남기기도 했지만, 당시 지배자에 의해 소환돼 이동 중에 행방불명된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다.
주인의 추천으로 야크 샤부샤부와 훠궈를 주문했다. 갈탄으로 불을 내고 신선로 국물에 채소 몇 가지와 버섯, 고기를 넣었다. 부글부글 끓으니 맑은 물이 점점 진한 육수로 변한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에서 초식동물로 성장한 야크는 부드러운 육질로 환상적인 맛을 제공한다. 10여년 전 티베트를 찾았을 때는 성스러운 동물이라는 생각으로 먹지 않았다. 치기를 벗고 수저를 드니 눈물 나게 감사할 따름이다. 주인을 불렀다. “야크만 한 접시 더!”
쓰구냥산은 아바장족강족자치주 샤오진 현에 위치한다. 티베트민족인 장족(藏族)과 또 다른 민족인 강족(羌族)이 함께 살아가는 지방이다. ‘구냥’은 아가씨란 뜻이다. 아마도 아가씨를 연상시키는 산의 형세가 상냥한 이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넷째 아가씨가 있으니 큰 아가씨, 둘째, 셋째도 있다. 남쪽부터 다구냥산, 얼구냥산, 싼구냥산이며 쓰구냥산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최고 6,250m 요매봉을 품은 쓰구냥산이 가장 높다. 쓰구냥산은 키 작은 언니 셋을 다 포함해 부르기도 한다. 쓰구냥산에만 세 개의 트레킹 코스인 쌍교구, 장평구, 해자구가 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쌍교구로 향한다. 입장권을 산 다음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산속 깊이 들어간다. 한 장소를 관람하고 다시 버스로 이동해 하산길에 차례로 풍경을 감상한다. 먼저 해발 3,800m 홍삼림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6월에 만나는 겨울이다. 햇볕이 한겨울 분위기를 녹이고 있어 몹시 춥지는 않다. 밤새 덮인 눈이 녹으며 나뭇가지에서 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푸르게 돋아나는 새순을 소담스럽게 감싸고 있다. 구름에 가려 있다가 살짝 정체를 드러내는 설산도 보인다.
버스 한 대에 사람이 다 타면 출발이다. 10분 이동하면 포탈라봉(布达拉峰)을 관망하는 장소다. 티베트 불탑인 초르텐에는 오색 깃발인 타르초가 반짝인다. 고도가 높아 숨이 가쁘지만, 탑을 한 바퀴 도니 해발 5,240m 봉우리가 만년설을 펼친다.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을 건축할 당시 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전국을 돌며 궁의 건축 방안을 고민하던 금강역사가 이곳에 왔다. 봉우리가 독특하고 신비로워 스케치를 했다. 라싸로 가져간 후 봉우리의 웅장한 자태를 담아 포탈라궁을 건축했다는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봉우리에 대한 자랑으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구름에 조금 가려 있고 하얗게 눈을 머금었다. 범접을 불허할 만큼 웅장한 자태가 전달된다. 눈이 다 녹는 한여름이라면 참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타르초가 휘날리는 티베트는 역시 설산이 배경이어야 더 멋지다.
겨울을 헤치고 나온 진정한 봄의 탄생, 쓰구나춰(四姑娜措)에 내린다. 쓰구냥이 목욕을 하던 성스러운 호수라는 말이다. 빙판이었을 호수에 나무와 산 위의 설산까지 고스란히 반영으로 담겼다. 수직으로 내리꽂힌 나무는 호수 깊이 들어갔다. 키 작은 나무들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연주하는 듯하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은유를 마음에 담아둔다.
설산이 녹은 물은 폭포를 따라 내려와 작은 도랑을 만든다. 하류로 갈수록 넓어지자 고무보트로 표류를 한다. 표류할 사람만 버스에서 내려야 하는데 함께 내리고 말았다. 티베트 복장을 한 가이드 아주머니는 자꾸 달아나는 딸을 끌고 오고 아들은 점박이 새끼 야크와 장난을 치고 있다. 풀을 뜯던 어미 야크가 고개를 돌린다. 어제 밤에 먹는 야크 고기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버스를 타고 출구로 나왔다. 홍삼림, 포탈라봉 설산과 따뜻한 쓰구나춰까지 행복한 눈요기였다. 순백의 동굴을 빠져나온 듯하다. 겨울부터 봄까지 반응했더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각이 무디다. 3시간가량 시간을 보냈다. 높낮이 이동도 심해 고산증세도 약간 다녀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천연의 색감이 잔상으로 남는 쌍교구 트레킹이다. 아가씨 모습과 닮았다더니 쓰구냥산은 첫사랑의 데이트만큼이나 예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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