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고객사 SKTㆍKT, 전시공간 마련 안 해… “미중 무역갈등 해소 기다릴 수밖에…”
화웨이 사태가 국내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CEO들이 이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이동통신박람회 ‘상하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9’ 행사에 모두 불참한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번진 화웨이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황창규 KT 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이달 25~27일 열리는 상하이 MWC 행사에 불참한다. 상하이 MWC는 매년 2월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박람회인 MWC의 아시아판 행사다. 그 동안 통신 3사 CEO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하이 MWC에 매년 참석했다. 지난해 행사에도 황창규 KT 회장과 당시 LG유플러스 대표이사였던 권영수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올해 상하이 MWC에 CEO들이 불참하는 표면상 이유는 5세대(G) 이동통신 서비스와 관련해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지만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화웨이 사태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화웨이 사태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 기업에 ‘반(反) 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도 이에 맞서 삼성, SK하이닉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불러 미국의 압박에 협조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사이의 선택에 내몰린 한국 기업으로선 민감한 시기에 열리는 상하이 MWC 행사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상하이 MWC는 화웨이 박람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 대표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주역인 행사다. 올해도 화웨이의 켄후 순환회장이 기조 연설을 맡는 등 화웨이가 행사의 대표기업으로 나서 5G 서비스와 장비, 휴대폰 등을 시연할 예정이다.
국내 통신업체들로서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통신업체들은 예년과 달리 별도의 전시 공간도 마련하지 않는다. SK텔레콤과 KT는 행사의 수상업체 후보에도 올랐으나 따로 전시 공간을 마련하거나 CEO가 참석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자제할 예정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에 비해 상하이 MWC는 새로운 게 없어서 볼거리가 많지 않다”며 “다만 아시아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한국업체의 위상과 중국업체들과 관계를 감안해 국내 통신사 CEO들은 매년 참석했으나 올해는 아주 미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퀄컴, 노키아, 에릭슨 등 미국과 유럽의 IT 업체들이 상하이 MWC에 전시 공간을 마련해 참석하는 마당에 국내 통신업체들의 행사 불참은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화웨이와 경쟁관계이거나 부품을 공급하는 해외 업체들과 달리 국내 통신사들은 화웨이 장비와 휴대폰을 구입해야 하는 고객사이기 때문에 입장이 다르다.
국내 통신 3사는 4G 서비스인 롱텀에볼루션(LTE)과 5G 서비스에서 화웨이 장비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유선으로 연결되는 기간망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LG유플러스는 휴대폰과 직접 연결되는 기지국 장비에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문제는 국내 통신 3사들이 미국의 요구처럼 간단하게 화웨이 장비를 다른 업체 장비로 교체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미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LTE는 물론이고 서비스 초기 단계인 5G 역시 기간망과 중계기를 교체할 경우 사실상 통신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통신업체들 입장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미중 무역 갈등이 해소돼 화웨이 사태가 일단락되길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돌출 행동으로 눈에 띄는 것보다 최대한 모든 움직임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행사 참가 여부를 놓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만큼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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