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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 한글 모르는 어르신이 한 분도 안 계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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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 한글 모르는 어르신이 한 분도 안 계실 때까지”

입력
2019.06.21 00:4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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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글배달교실 6년째 이어져… “글자 읽는 재미로 길 다녀”

“그게 아이고(아니고) 받침이 도망가뿌면(도망가버리면) 안 된다 하이까네(안 된다니까)…”

13일 낮 12시30분, 경북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경로당.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어르신 23명이 가나다라 한글이 바둑판처럼 새겨진 노란 책상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연습장에 열심히 한글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 어르신에게 참견도 하면서 써 본 글씨를 보고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동시 한글배달교실’ 수업의 한 장면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겨우 뗀 수강생들은 이날 9주차 수업으로 ‘ㅅ(시옷)’의 쓰임새에 대해 배웠다. 한글교사 조금순(62)씨는 “받침은 자식과도 같아서 자음과 모음 사이 아래에 항상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안동시 한글배달교실이 지역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학습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업은 매주 화ㆍ목요일 낮 12시30분부터 안동지역 14개 마을 경로당별로 2시간 동안 열린다. 3년 과정으로 수강생은 한글을 깨치지 못한 지역 어르신들이다. 초등 1년 수준 한글이지만, 평균연령 80세를 웃도는 할머니들에겐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배움의 열기 하나만큼은 대입 수험생 못지않다. 시화전을 열고 시집도 발행할 정도로 성장했다.

2년차인 김재영(78)씨는 “이름자도 읽을 수 없어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면 이웃집에 부탁해야만 했고, 고지서나 영수증을 봐도 얼마인지 몰라 답답했는데 이젠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니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기뻐했다.

교사 조씨는 “어르신들이 ‘글도 모르고 시집온 게 부끄러워서 사회생활도 못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먹먹했다”며 “’갓길조심’과 같은 교통표지판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시 한글배달교실은 안동시가 지역주민의 문맹탈출을 위해 한국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 안동시평생교육지도자협의회와 협약, 2014년부터 열고 있다. 시와 수공이 행정지원과 예산을 대고 협의회가 주관하는 방식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배려해 마을 경로당별로 학습장을 마련했다.

2014년 3,000만원의 예산으로 안동댐 인근 와룡면 서현리 등 3개 마을 47명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2017년부턴 안동시도 예산을 부담하기 시작, 올해는 시비 8,000만원 등 총예산 2억원에 14개 마을 320명으로 커졌다.

그 동안 한글배달교실 졸업생은 770명. 이들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황숙자(76)씨는 “화장실이란 글자도 몰라 바로 앞에서 헤매곤 했지만 지금은 표지판 속 글자를 읽는 재미로 길을 다닐 정도”라고 말했다. 허정순(79)씨는 시 쓰기에 도전하겠다고 했고 김시영(84)씨는 지난해 10월 ‘안동시장님께 올림’이라는 편지를 써 주목을 받았다.

안동시는 2017년부터 매년 안동시청 로비 등에서 문해(文解)시화전을 연다. 지난해엔 수료생들의시 120여점을 담은 문해시집 ‘어머니의 시간’을 발간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해 발간한 전국 최초 시집이다.

이와 함께 지속가능한 평생교육과 학습법 공유 등을 목표로 하는 유네스코 글로벌학습도시 네트워크(UNESCO GNLC)에도 가입해 안동시 한글배달교실의 브랜드가치도 높인다는 복안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백발이 성한 어르신들의 배움에 목마른 눈빛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든다”며 “안동에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이 한 분도 안 계실 때까지 한글배달교실을 지원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동=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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