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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민들 협동조합 꾸려 100년 빵집 살려내… ‘안필드의 기적’

입력
2019.06.25 04:40
수정
2019.06.25 14: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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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스며든 사회적경제] <상> 영국에게서 배워라

축구팬들이 사랑하는 유명 빵집…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 모아 공동 소유ㆍ운영

일자리 제공하고 수익은 지역에 유입… 몰락한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해법 모색

이 거리 오른쪽 모퉁이에 빵집 ‘홈베이크드’가 위치해있다.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영국 프로축구 명문구단 리버풀의 홈구장이다. 홈베이크드 제공
이 거리 오른쪽 모퉁이에 빵집 ‘홈베이크드’가 위치해있다.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영국 프로축구 명문구단 리버풀의 홈구장이다. 홈베이크드 제공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10년 영국 프로축구 명문구단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Anfield) 맞은편 길모퉁이 빵집 ‘미첼스(Mitchell’s)’. 100년 넘게 대를 이어 온 이 유명 빵집도 도시의 명운까지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한때 번영했던 항구도시 리버풀시는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3년 영국 정부는 가난과 실업을 대표하는 쇠퇴한 이 도시를 재개발하기로 했다. 미첼스가 위치한 안필드 지역도 그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다. 재개발은 무산됐다. 한번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는 텅 비었다.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던 미첼스 역시 이렇게 폐업을 맞게 됐다. 정부와 시장도 실패하고 손 떼버린 안필드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재개발로 폐허가 된 거리. 홈베이크드 제공
재개발로 폐허가 된 거리. 홈베이크드 제공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남아있던 지역 주민들이 나서 “여기에 다시 빵집을 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빵집 운영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고, 크라우드펀딩으로 돈을 모아 공동 소유하기로 했다. 2013년 같은 자리에서 간판만 바꿔 달고 문을 연 베이커리 ‘홈베이크드(Homebaked)’다. 어느덧 연간 매출 35만 파운드(약 5억2,000만원)를 올리는 지역 거점공간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13일 홈베이크드 협동조합 이사회의 일원인 샐리 앤 왓키스(55)씨는 “지역공동체가 빵집을 소유하고 함께 운영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이 지역사회로 흘러 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홈베이크드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협동조합을 꾸린 주민들은 이윤과 효율 중심에서 벗어나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홈베이크드를 운영하고자 했다. 정부와 시장의 한계를 딛고 지역공동체에 닥친 문제를 풀어갈 대안으로써 사회적경제 방식을 택한 것이다. 홈베이크드의 작지만 큰 성공은 ‘왜, 지금, 다시 사회적경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대답일지 모른다.

홈베이크드 외관과 내부 모습
홈베이크드 외관과 내부 모습

◇사회적경제가 써나가는 ‘안필드의 기적’

몰락한 지역공동체를 되살리는 해결방안으로 사회적경제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네 빵집, 주택 등의 소유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민자산화’ 방식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협동조합이 태동한 영국에서는 눈여겨볼만한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리버풀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룻동안 1,500개 파이를 팔아치우는 홈베이크드 역시 주민들 손으로 만든 지역재생의 모범 사례다. 15평 남짓 규모의 홈베이크드의 연매출 35만 파운드(5억1,600여만원) 중 26만 파운드(3억8,300여만원)가 그대로 지역경제에 다시 투입된다. 지역주민인 직원 18명에게 주는 월급 16만 파운드와 야채, 고기 등 로컬 식재료 구입에 10만 파운드를 쓴다. 주민들에게 저렴하지만 질 좋은 음식과 좋은 일자리, 직업훈련의 장소를 제공하는 것은 홈베이크드의 존재 이유다. 왓키스씨는 “축구장 앞에 위치해 (축구를 보러 온) 다양한 세대와 인종이 모여 섞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사회적으로 상당히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지역 비즈니스로 크게 성장하는 겁니다. 더 커져서 좀더 많은 이 동네 사람들이 여기서 일자리를 찾고,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게 목표죠.”

브릿 유겐슨씨가 홈베이크드 공동체토지신탁의 빈집 개조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브릿 유겐슨씨가 홈베이크드 공동체토지신탁의 빈집 개조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는 그저 빵집을 운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ㆍCLT)을 만들어 홈베이크드 주변 빈집을 개조하는 작업에도 뛰어들었다. CLT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토지에 주택이나 상업 공간을 짓고, 발생하는 수익을 그 지역사회에 돌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익 성격의 부동산 개발인 셈이다. 홈베이크드 CLT의 시민참여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브릿 유겐슨(42)씨는 “CLT는 수익을 단지 몇몇 주주가 아닌 전체 조합원 모두를 위해 쓴다는 점에서 민간 개발업자와 다르다”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동네, 이웃을 살리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으로써 적합한 모델이다”고 설명했다. CLT는 홈베이크드가 있는 블록의 주택을 매입해 저렴한 임대주택(어포더블 하우징)으로 재단장해 공급할 계획이다. 도시 재생과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에 뜻을 두고 생산과 소비,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적경제 시스템을 접목하려는 안필드 주민들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민 손으로 죽어가는 마을을 되살리다

리버풀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맨체스터시 스트렛포드 주민들 또한 제 손으로 지역을 되살린 주인공들이다. 이 동네에서 13년을 산 아누슈카 다이튼(44)씨와 주민들은 사라질 위기의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을 지켜냈다. 1878년에 지어진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Stretford Public Hall)’이다. 그 결과는 놀랍다. 되살린 것은 오래된 건물 하나뿐인데 죽은 도시에 희망을 불어넣었으니 말이다.

1878년에 지어진 빅토리안풍의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 외관
1878년에 지어진 빅토리안풍의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 외관

퍼블릭 홀은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이 지역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의 유지ㆍ보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구는 2014년 이 유서 깊은 건물을 팔기로 결정했다. 우연찮게 이 소식을 알게 된 다이튼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을 지키자”는 글을 올리고 사람들을 모았다. 동네 펍에서 가진 첫 모임에 주민 50명이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18개월간 구청과의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일단 이 건물을 지역자산으로 등록했다. 영국에서는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지역자산으로 지정하는데, 지역자산이 되면 지역주권법(Localism Act)에 의해 소유자가 팔고 싶어도 6개월 간 매매를 할 수 없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시간을 번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2개월 만에 800여명으로부터 25만 파운드(3억7,000여만원)를 모았다. 다이튼씨는 “보통 정부에서 하는 일을 반대할 때는 정부의 잘못에만 집중하는 반면 우리는 ‘우리에게 이 공간이 온다면 뭘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얘기하는 포지티브 캠페인을 펼쳤다”며 “눈에 보이는 비전을 보여주면서 얘기한 게 사람들에게 먹혀 들었고, 희망을 갖고 우리 한번 해보자는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제를 내 삶의 문제로 보고 스스로 풀어가려는 운동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아누슈카 다이튼씨가 주민들이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을 소유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퍼블릭 홀은 내부에는 100여년 전 내부 장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아누슈카 다이튼씨가 주민들이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을 소유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퍼블릭 홀은 내부에는 100여년 전 내부 장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결국 구는 두 손을 들었다. 2015년 주민들에게 이 건물의 소유권을 넘겼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전혀 없던 주민들이 당시 느낀 성취는 대단했다. 맨체스터에서도 대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패배감과 무기력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나서자 동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삭막했던 동네에도 힙한 레스토랑과 카페, 바가 생겨났다. 다이튼씨는 “퍼블릭 홀이라는 공간이 이제는 이 동네에 이런 투자를 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신호탄이 됐고, 커뮤니티에 재활력을 불어넣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 개발업자만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도 이렇게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증명해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렛포드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새단장을 마친 공간에서는 주민 대상 요가 수업이 진행 중이다. 메인홀은 400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개조해 컨퍼런스, 파티,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여할 계획이다. 수리가 끝난 곳은 한 달 임대료 140파운드를 받고 코워킹스페이스로 제공하거나 예술가들에게 공방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번 돈은 퍼블릭 홀을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로 만드는 데 다시 쓰인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약물 대신 요가 수업이나 지역사회 활동 참여 등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을 제공하는 것은 앞으로 목표 중 하나다.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폐허가 됐던 그랜비 스트리트가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잘 가꿔진 거리로 바뀌었다.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폐허가 됐던 그랜비 스트리트가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잘 가꿔진 거리로 바뀌었다.

◇주민 12명은 어떻게 폐허가 된 거리를 재건했나

정부도 시장도 아닌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 재생 사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버풀 도심과 가까운 ‘그랜비 포 스트리츠(Granby 4 Streets)’의 재건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후반 시는 그랜비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그랜비 스트리트에서 뻗어나간 비콘스필드ㆍ케언스ㆍ저민ㆍ듀시 등 4개 거리를 남기고 모두 철거했다. 원주민들은 쫓겨났다. 주로 공장에서 일하는 유색 인종이었다. 주민들은 시가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를 한다고 느꼈다. 68채 중 8채에 사는 12명은 끝까지 저항했다. “시에서는 일부러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빈집 유리창을 깼지요. 옆집에 사람이 사는데도 집을 철거해 위험을 느끼도록 하고 의도적으로 이 지역을 게토화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대부분 이민자인 우리에겐 이사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어디 가서 또 백인들 사이에 끼어 살겠어요?”

그랜비 스트리트 인근 거리는 여전히 빈집으로 남아있다.
그랜비 스트리트 인근 거리는 여전히 빈집으로 남아있다.

이들은 1993년 그랜비주민협의회를 꾸렸다. 이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거리를 청소하고, 보이는 곳마다 꽃을 심었다. 매달 거리마켓도 열었다. 주민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헌옷부터 공예품, 먹거리 등을 판매한다. 변화는 더뎠지만 주민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조합원 100여명을 모아 2011년에는 그랜비 포 스트리츠 CLT를 꾸렸다. 주민들이 직접 남아있는 거리를 지키고, 폐허가 된 빈 공간을 되살릴 해법을 찾겠다는 의도였다. 이들은 마을을 변화시킬 건축가를 찾았다. 예술가 모임인 ‘어셈블’의 혁신적인 젊은 건축가들은 그랜비 스트리트의 빈집 10곳을 실내 정원인 ‘유리 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2015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 예술상’을 받으면서 전역의 관심을 모았다. 시는 결국 주민들과 마주 앉을 수밖에 없었다. CLT는 시로부터 11채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이중 6채를 보수해 싼 값에 임대를 주고 있다.

그랜비 스트리트에 30년 넘게 산 헤이즐 틸리씨가 옛 풍광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랜비 스트리트에 30년 넘게 산 헤이즐 틸리씨가 옛 풍광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산 헤이즐 틸리(68)씨는 “이 길이 다 허물고 새로운 걸 지을 게 아니라 아직도 주민들이 살기 충분한 환경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30여년이 걸린 셈”이라며 “몇몇이 주도해 빨리 해결하기보다는 우리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여하는 게 중요했고, 그렇게 모아내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텅 비었던 그란비 스트리트에는 이제 8채를 제외한 59채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랜비 스트리트는 사회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싱크탱크 네스타가 2016년 영국의 실용주의 전통을 되살릴 만한 본보기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결승점을 통과한 것은 아니다. CLT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런던시 ‘코인 스트리트(Coin Street)’가 선례다. 1970년대 들어 템스강의 항만 기능이 쇠락하면서 활력을 잃은 이 일대에는 지역주민 주도로 시작된 마을 만들기 운동이 현재 완전히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지역공동체가 시로부터 받은 국공유지에 임대주택과 공원, 강변산책로 등을 짓고, 야외 카페와 상가를 조성해 수익을 내고 있다. 이미 2002년에 수익이 400만 파운드(59억여원)에 달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커뮤니티 복지시설도 운영 중이다. 사회적 가치의 끊임없는 재생산을 유도해 낸 영국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영국의 사회혁신연구소 ‘스프레드아이’의 김정원 대표는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북유럽이나 독일,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경합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고 눈여겨볼만하다”라며 “특히 시민자산화는 국가와 시장의 중간 지점에서 시민 주도로 붕괴된 지역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다”고 말했다.

런던ㆍ맨체스터ㆍ리버풀(영국)=글ㆍ사진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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