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샬롯의 윗동과 아랫동을 양파 손질과 같은 요령으로 잘라내고 길이 방향으로 반 가른다. 그리고 껍질을 벗기는데, 얇고 착 달라붙어 잘 벗겨지지 않는다면 맨 바깥 켜 전체를 껍질과 함께 들어낸다. 약간의 손실이 있지만 잘 벗겨지지 않는 껍질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조리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뿐더러, 때로 맨 바깥 켜에 멍이 들어 있어 어차피 안 쓰는 게 나은 경우가 왕왕 있으니 차라리 속 편할 수 있다.
반 가른 샬롯을 도마에 눕힌다. 양파보다 훨씬 작아 숭덩숭덩 썰기도 어려우니 난이도가 좀 높은 칼질이 필요하다. 칼을 안 쓰는 손의 엄지와 검지로 샬롯의 양 끝을 꼭 잡고, 칼 끝으로 길이 방향으로 썬다. 작은 재료이니 최대한 곱게, 최대 3㎖ 간격으로 썬다. 칼질이 몇 차례 더 남았으므로 뿌리 쪽은 썰지 말고 남겨 둔다. 이제 엄지와 검지로 샬롯의 둥근 윗부분을 잡고, 이번엔 수평으로 같은 간격(3㎖)의 칼집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길이와 수직 방향으로 썰면 최대한 고르게, 마치 다진 것처럼 샬롯을 썰 수 있다. 글로 설명하니 왠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정육면체의 세로, 가로, 높이 순으로 한 번씩, 같은 폭으로 칼질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만약 이보다 더 고운 샬롯이 필요하다면 그대로 칼등에 손을 올려 곱게 다져 주면 된다. 처음부터 아주 편하게 할 수 있는 칼질은 아니지만, 부담스럽다면 푸드프로세서나 손 블렌더로도 곱게 썰 수 있으니 좌절은 금물이다. 다만 칼 다루는 솜씨를 한 단계 높이고 싶을 때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식재료 및 손질 요령이 샬롯 잘게 썰기이므로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지만 되풀이할수록 좀 더 좁은 간격으로, 곱게 칼집을 넣는 자신을 발견하고 뿌듯해질 수 있다. 한 10년쯤 연습하다 보면 요리의 준비 단계에서 불안함이나 귀찮음을 떨쳐 내고 집중하는 데 요긴한 의식처럼 자리 잡는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그건 정말 빼어난 솜씨의 직업인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가끔 나는 시간에 간신히 요리하는 일반인이라면 좋은 연장을 갖추거나 있는 것이라도 잘 써야 힘이 덜 들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샬롯을 잘게 써는 경우라면 날이 좁고 얇지만 긴 과도류가 일반적인 식칼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양파보다 작지만 맛은 강한 샬롯
그런데 샬롯은 대체 무엇인가? 부추속(Allium Genus)의 식물이니 양파나 파 등의 일가이다.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이나 골프공만 하게 작고 속살은 보라색이니 크기를 줄인 적양파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전 지구인의 맛내기 채소로 쓰이는 양파와 흡사한데, 크기가 줄어들면서 마치 물기만 고스란히 빠지기라도 한 듯 농축된 즉 강렬한 맛과 향을 낸다. 그래서 양파가 맛의 바탕을 깔아 준다면 샬롯은 비슷한 느낌과 표정을 고수하면서도 맛을 한 차원 높여 줘 소스부터 스테이크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그래서 몇몇 요리사나 요리 전문 작가는 샬롯을 ‘당신의 맛 세계를 업그레이드해 줄 비밀 재료’라 일컫기도 한다.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붙박이지만 가정의 부엌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곱게 썬 샬롯을 칼날로 잘 그러모아 공기에 담아 놓고 샬롯으로 음식의 맛을 업그레이드해 보자. 날로 쓰는 경우, 샬롯 맛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예가 샐러드이다. 드레싱의 한 종류인 비니그레트를 만들 때 1작은술 또는 반 개 분량을 더하면 강렬한 향이 샐러드 전체의 집중력을 높여 준다. 마늘과는 또 다른 결의 강렬함인 데다가 그만큼 아리고 맵지도 않아 어떤 향신채보다 먼저 챙기고 싶은 맛과 향을 내준다. 비니그레트를 만들 때는 식초든 레몬즙이든 산에 10~15분 재워 두면 향은 그대로지만 매운맛은 살짝 숨이 죽어 부담이 줄어든다. 비니그레트를 포함한 드레싱은 생채소 샐러드에만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데치거나 찌거나 구운 채소에 끼얹어도 온기와 함께 샬롯의 향기가 살아나면서 맛이 좀 더 섬세해진다. 우리가 늘 먹는 채소인 브로콜리(데치거나 찐 것), 당근(은근히 삶거나 오븐에 구운 것)과 짝짓기를 권한다.
◇살짝 볶아 스테이크나 버섯 위에
양파와 마늘을 은근히 오래 볶으면 단맛이 살아나는 것처럼, 샬롯도 익히면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각종 볶음류에 쓸 수 있는데, 일종의 연습으로 스테이크의 고명을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다. 스테이크를 다 굽고 나서, 소금과 후추로 맛이 든 소기름이 번들거리는 팬에 곱게 썬 샬롯을 올려 나무 주걱으로 계속 뒤적이며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스테이크는 아주 뜨겁게 지진 팬에 굽는 게 정석이므로 남은 열로 샬롯이 타 끈적거리며 쓴맛을 내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무쇠팬처럼 열전도율이 떨어져서 한번 열기를 머금으면 오랫동안 식지 않는 조리도구라면 속 편하게 불을 끈 상태에서 볶기 시작해 모자라다 싶으면 다시 불을 켠다. 혹시라도 스테이크를 굽는 김에 (레드)와인을 마시고 있었다면 샬롯에도 한두 모금 준 뒤 알코올을 날리고 살짝 졸여 마무리한다. 와인을 나눠 줬든 아니든 볶은 샬롯을 스테이크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영국의 몰든 소금처럼 굵고 아삭한 바닷소금을 올리면 손이 좀 가는 소스 없이도 잘 갖춘 듯한 요리가 된다.
샬롯은 어떤 볶음 요리의 맛도 돋워 주지만 버섯, 특히 양송이의 맛을 몇 단계 끌어 올려 준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센 불에 올려 달군다. 버섯에서 물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센 불에서 짧게 볶을 것이므로 얇은 논스틱보다 두툼한 스테인리스나 무쇠팬이 더 좋다. 팬을 달구는 동안 양송이를 손질한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니 버섯을 물로 씻으면 안 된다는 통념은 근거가 없으므로, 큰 대접에 물을 넉넉히 담고 한꺼번에 담가 가볍게 헹궈 낸 뒤 건져 종이행주 등으로 감싸 닦아 낸다. 작은 것이라면 반만 가르면 되는데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대체로 큰 편이므로 썰어 4등분한다. 팬의 기름에서 연기가 피어오를락 말락 할 정도로 뜨겁게 달궈지면 썬 버섯을 올려 자주 뒤적이며 볶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불에서 내리기 1, 2분 전에 곱게 썬 샬롯을 솔솔 뿌리고 고루 뒤적여 마무리한다. 어차피 남는 열로 충분히 익으므로 좀 덜 익힌다는 느낌으로 볶는 게 좋다. 버섯이 지닌 땅의 향기 위로 볶은 샬롯의 향긋함이 군침 넘어가도록 피어오른다. 버섯은 감칠맛이 빼어난 재료이므로 굳이 고기 등에 곁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 팔방미인
샬롯이 양파, 파, 마늘과 일가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식에서도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다. 맛과 향이 양파보다 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단 김치의 맛내기 재료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열무김치나 물김치 등에 양파 대신 써도 좋고, 원래 양파를 잘 쓰지 않는 배추나 총각김치 등에 더하면 김치가 감사할 것이다. 김치에 샬롯을 쓸 수 있다면 발효든 즉석이든 피클에도 못 쓸 이유가 없다. 한편 샐러드와 접근 방식에 큰 차이가 없음을 감안한다면 나물에도 샬롯의 자리가 있는데, 일단 웬만한 무침 나물에는 날 것을 쓸 수 있다. 샬롯을 쓰기 시작한 지 어언 15년, 집에서 여러 나물에 두루 써 본 결과 데치거나 삶아도 아삭함이 살아 있는 콩나물에 생샬롯이 가장 잘 어울렸다. ‘콩나물무침에는 마늘’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체로 미리 다졌거나 한술 더 떠 냉동 보관해 신선한 향은 다 날아가 버린, 독한 마늘이 콩나물에 쓰인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갓 썬 샬롯이 맛과 향뿐만 아니라 일말의 아삭함도 지녀 콩나물의 질감과도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한편 향이 좀 강한 나물에는 볶은 샬롯이 제짝이다. 앞에서 살펴본 스테이크 고명의 경우와 비슷한데, 더 약한 불에 은근히 볶아 단맛을 최대로 끌어낸 뒤 무치는 양념장에 더한다. 역시 두루 먹어 본 결과에 의하면 땅의 향과 쌉쌀함이 또렷한 취나물이 원래부터 반드시 그렇게 먹어야 하는 것처럼 아주 잘 어울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원래 볶는 나물, 즉 애호박 같은 것들에는 당연히 볶은 샬롯이다. 버섯 볶음에 더하듯 주연인 채소를 충분히 익힌 뒤 마무리 단계에서 샬롯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샬롯의 보관 요령을 살펴보자.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 파는데, 양파를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듯 샬롯도 그저 상온에 보관하는 게 좋다.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면 적어도 한 달은 멀쩡히 두고 쓸 수 있고, 3~6개월까지도 보관 가능하다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에서는 샬롯도 양파처럼 그물망에 넣어서 파는지라 그대로 어딘가에 매달아 두고 쓰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으므로 구멍을 송송 뚫은 종이 봉투에 담아 주둥이를 잘 여며 주면 걱정 없이 오래 두고 쓸 수 있다.
◇맛이 강한 꼬마 양파, 샬롯 통구이
고깃집에서 얇게 저민 마늘이나 큼지막하게 썬 양파를, 양꼬치집에서 통마늘을 구워 먹는 맛을 아는 우리라면 샬롯의 잠재력을 이해하기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구운 부추속의 달큰한 맛을 잘 알고 있으니 양파보다 맛이 진하고 표정이 뚜렷한 샬롯 구이에도 낯섦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맛이 강한 꼬마 양파’이므로 샬롯은 통으로 구웠을 때 가장 맛있다. 게다가 껍질을 벗길 필요도 없으니 오븐에 구우면 정말 거의 손을 안 대고도 집약적인 맛의 덩이를 얻을 수 있다. 샬롯을 먹고 싶은 만큼 뿌리 쪽만 잘라 낸 뒤 은박지에 올린다. 소금과 후추, 기름을 넉넉하게 더하고 은박지를 꼼꼼히 잘 여민다. 200℃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완전히 익어 칼이 저항 없이 한가운데까지 들어가도록 한 시간가량 굽는다. 그대로 손댈 수 있을 때까지 식히면 껍질에서 속살이 쏙, 빠진다. 식용유나 올리브기름, 버터까지 다 제각각 잘 어울린다.
먹을 때는 익으면서 맛과 향을 나눠 준 기름까지 한꺼번에 쓴다. 일단 그저 옆에 놓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기의 ‘베프(베스트프렌드)’가 되어 줄 수 있다. 속까지 익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알싸함도 싹 가셨으므로 통으로 집어 먹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아스파라거스나 방울토마토 등, 레스토랑에서 곁들이로 등장하는 채소 사이에 줄을 함께 세워도 좋다. 맛이 좋아서 다른 채소들을 하나씩 퇴출시키고 싶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기름째 곱게 다지거나 갈아 비니그레트의 바탕으로 써도 좋고, 삼겹살에 곁들이는 쌈장에 섞으면 혼자만의 맛내기 비법이라도 하나 발견해 낸 양 뿌듯해질 수 있다. 냉장고에 사흘은 두고 먹을 수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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