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일본방공식별구역 일대 사업 추진
日 자위대 승인 받아야, 거부 땐 문제 심각
해상초계기 사태계기 군사충돌 가능성 제기
수조원 투입시설 사장ㆍ에너지 안보 위기도
최근 불거진 한ㆍ일 관계 악화로 울산시가 동해가스전 플랫폼 일대에 추진중인 부유식 해상풍력사업이 ‘복병’을 만났다. 플랫폼이 사업의 기반이 되고 있으나, 일본이 ‘몽니’를 부릴 경우 출입이 어렵기 때문. 그러나 울산시는 정작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수조원이 투입되는 사업 추진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KNOC)가 동해-1 가스전을 개발ㆍ 운영하기 위해 설치한 울산 앞바다 동남쪽 58km 지점에 설치한 시추시설(플랫폼)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밖인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에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드나드는 한국 헬기는 항상 일본 자위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위치한 플랫폼은 한국 수역인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는 한국방공식별구역과 배타적 경제수역이 서로 달라 공중은 일본의 치외법권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구역은 처음부터 서로 무관하게 설정됐다. 방공식별구역(ADIZㆍ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1951년 미국 공군이 6·25전쟁 중 중공군 전투기를 견제하기 위해 설정했다. 반면 EEZ는 1998년 한일어업협정 때 최종 확정됐다. 뒤에 확정된 EEZ가 KADIZ보다 넓다.
한ㆍ일관계가 순탄하던 지금까지는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드나드는 것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본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최근 한ㆍ일관계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는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불똥이 튄 곳은 울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가스전 일대 부유식 해상풍력사업이다.
울산시는 송철호 시장의 공약에 따라 2012년께 채굴이 끝나는 석유공사의 ‘동해 가스전’ 플랫폼을 중심으로 2030년 이후 원전 1기에 맞먹는 1GW급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탈 원전 기조 속에 이뤄지고 있는 ‘송철호號’ 최대 현안으로 민선 7기의 성패가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한국동서발전, 현대중공업 등 많은 기업ㆍ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울산시는 가스채굴이 끝나면 용도 폐기될 석유공사 플랫폼에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모아 육상으로 보내는 일종의 해상변전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190개가 넘는 대 한국 보복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방공식별구역(JADIZ)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울산시의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은 기반부터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에 규정된 개념이 아니라 인접국가 사이에 상호 약속한 관습법 이지만, 일본이 트집을 잡고 나선다면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될 시설의 ‘사장’은 물론 ‘에너지 안보’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당장 해상풍력 사업 준비단계부터 일본방공식별구역에 드나들 일이 많은 데 일본이 허가를 거부하면 사업 차질은 불가피하게 된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12월 20일 동해상에서 발생한 한국 광개토대왕함과 해상자위대 초계기 간 화기 관제용 레이더 가동 주장과 관련, 오는 10월 열리는 자국 해상자위대 관함식에 한국 해군을 초청하지 않기로 하는 등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어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울산시는 아직 JADIZ에 대한 개념 정립 등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울산시와 정부를 믿고 수 조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및 단체에 대한 신뢰성은 물론 추동력 저하를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부유식(고박형)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원전에 비해 설치운영비가 4~5배 이상 들어 육지에서 해상으로 15㎞이상 떨어질 경우 REC(전력매입가중치)가 3.5배가 적용돼 전력요금 인상 요인이 높다”며 “여기다 ‘진입’ 문제마저 겹치면 발전경제성 저하로 사실상 사업추진 자체가 무의미해질 공산마저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 1998년 한국을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한 동해가스전은 2021년 연말께 고갈돼 제 기능을 멈추게 된다. 건립비용만 1,200억이상 투입된 해상플랫폼은 구조물 높이가 200m로, 수심 152m 지역에 설치돼 있다. 현대중공업이 만든 이 시설은 1등급(리히터 규모 6)의 내진설계와 초속 51m 바람과 파고 17.5m에도 견딜 수 있다. 국내 대륙붕 밖에 위치한 해상플랫폼은 어초 역할도 해 주변에 어족 자원이 풍부해 우리 어민들의 황금어장이 되고 있어 풍력발전기 설치에 따른 어장폐쇄도 앞으로 울산시가 넘어야 할 산의 하나이다.
*방공식별구역ㆍADIZ(Air Defence Identification Zone) 자국의 영토와 영공을 방어하기 위한 구역으로 국가안보상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군용항공기를 조기에 식별하기 위해 설정한 임의의 선을 말한다. 이곳에 진입하는 군용 항공기는 해당 국가에 미리 비행계획을 제출하고 위치 등을 통보해야 한다. 통보 없이 외국 항공기가 침범하면 전투기가 출격한다. 한국의 KADIZ와 일본의 JADIZ는 겹치는 부분이 많아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ㆍEEZ(Exclusive Economic Zone) 영해로부터 200해리 이내의 수역. 한 나라가 그 지역의 개발 탐사, 구조물 설치, 해양 조사를 독점적으로 할 수 있다. 보통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에 국제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독도 주변에선 EEZ 설정을 둘러싸고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다.
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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