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硏-KIST 등 공동 연구
행복감 유발하는 ‘오피오이드’
뇌 세포와 결합해 선호 기억 형성
특정 장소를 좋아하는 ‘선호기억’은 이전에 느꼈던 감정 때문에 생기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국내 연구진이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내놨다. 선호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뇌 세포 활동의 결과로 생긴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창준 인지및사회성연구단장 연구진과 경북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참여한 공동 연구진이 행복감을 유발하는 화합물인 ‘오피오이드’가 뇌의 별세포와 결합해 특정 장소에 대한 선호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 최신호에 게재됐다. 뇌 세포와 화합물 간의 결합이 장소에 대한 선호 기억을 형성한다는 걸 밝힌 건 처음이다.
오피오이드(Opioid)는 아편(Opium)에서 유래한 말이다. 몸 안의 오피오이드수용체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일컫는다. 행복감을 유발하는 신경호르몬 엔돌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 등이 대표적인 오피오이드다. 별세포는 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별 모양의 비신경세포로, 신경세포의 기능을 잘 유지되도록 돕는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두 개의 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한 상자에 실험쥐를 풀어 놓은 뒤 쥐가 어느 방을 좋아하는 지 살폈다. 그런 다음 선호하지 않는 방에 있을 때 실험쥐에게 해마에 있는 별세포의 오피오이드수용체와 결합하는 모르핀을 주사했다. 해마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험쥐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좋아하지 않던 방을 더 좋아하게 바뀐 것이다.
모르핀이 별세포의 오피오이드수용체에 결합하면 별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분비돼 특정 신경세포(SC-CA1)의 신호전달이 증가한다. 뇌에서 모르핀이 작용해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 SC-CA1의 신호전달이 늘면서 특정 장소에 대한 인식이 형성돼 해당 장소를 좋아하는 기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남민호 KIST 신경과학연구단 연구원은 “행복한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장소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여 특정 장소를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돌핀이 분비되거나 모르핀을 투약 받은 장소를 기억하고 좋아하게 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단장은 “행복과 선호를 유발하는 뇌의 메커니즘은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행복한 감정과 좋아하는 감정뿐만 아니라 사랑이란 감정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