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전혀요. 오히려 평범한 일본 시민들이 ‘소녀상 지킴이’로 나서주셨습니다. 평범한 일본 분들의 조용한 성원이 저희에게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일본 시민들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위태롭다 싶었다.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종군위안부를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그랬다. 역시나 논란이 불 붙더니 전시는 곧 중단됐다. 명분은 ‘테러 위협’이었다.
지난 5일 일본에서 귀국 직후 만난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54), 김운성(55) 작가에게 물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같은 게 있었느냐고. 작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시 첫날인 지난 1일, 한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소녀상을 찾았다. “눈이 먼 사람들은 손으로 세상을 만난다”던 말에 따라 작가는 양해를 구하는 관람객에게 흔쾌히 만져볼 것을 허락했다. 그는 소녀상을 어루만졌다. 소녀상 위에 입혀 둔 짙은 유화물감이 조금씩 손에 묻어 지저분해져도 개의치 않았다. 소녀상을 충분히 감상한 듯 “작품을 만지는 것을 허락해줘 고맙다”며 천천히 뒤돌아 사라졌던 이 관객의 차분함 그 자체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전시장 안은 평화로웠다. 대부분의 일본인 관람객들은 숙연한 자세로 차분하게 소녀상을 봤다. 한 중년 여성 관람객은 소녀상 손을 부여잡고는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겨우 이렇게 주먹만을 꼭 쥔 채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더 아프다. 자꾸만 심장이 저민다”고 말했다. 10살 남짓 소녀는 소녀상의 어깨와 자신의 어깨를 나란히 포갰다. 함께 온 어머니가 소녀상 어깨 위 새를 가르키자 소녀는 “이 친구가 외로울까봐 새가 날아와 준거야”라며 웃었다. 김서경 작가의 눈시울이 금세 벌게졌다. “이 소녀상 만들 때 정말 그랬거든요.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여서 마지막에 비둘기를 앉혔거든요.” 전시장은 그렇게 공감의 장이 됐다. ‘예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화는 개막 직후인 2일부터 깨졌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소녀상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 하더니,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보조금 지급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일본 내 극우단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녀상 전시 소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항의 메일과 팩스 수백여통이 쏟아졌다. 전시장 입구엔 ‘작품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일본 시민들이 ‘지킴이’를 자처했다. 소녀상을 지키겠노라며 머나먼 도쿄에서부터 날아온 일본인 관람객도 있었다. 한번은 1920년대 일본군 제복을 코스프레하듯 맞춰 입은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도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라도 낼 것처럼 왔지만, 정작 전시장 안의 숙연한 분위기에 짓눌려 별다른 얘기도 못한 채 되돌아갔다.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거나, 불만을 늘어놓는 일부 관람객도 있었지만, 이들 역시 소녀상 지킴이들이 점잖게 타이르자 별 말 없이 물러났다.
그럼에도 결국 전시는 중단됐다. 테러 위협 운운하면서 정작 보안검색을 강화하거나, 경호인력을 증원하는 일은 없었다. 전시중단 기자회견 때는 작가들 출입마저 통제했다. 그리곤 소녀상 앞에 가림막을 설치했다. 2015년 도쿄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일본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 소녀상의 기구한 운명이다. 두 작가는 “사람의 온기가 들지 않는 차가운 전시실에 갇힌 소녀상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고 했다.
전시 중단 이후 일본 시민들 움직임도 바빠졌다. 관람객들은 자발적으로 ‘소녀상 자경단’를 꾸렸다. 전시 중단을 핑계 삼아 소녀상을 언제 어느 때 몰래 철거해버릴지 몰라서다. 전시장 안팎에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작은 소녀상을 가슴에 안은 시민들은 전시장 앞에 진을 치고 일본 정부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트리엔날레 행사에 참가했던 작가들도 힘을 보탰다. 작가 72명은 6일 "일부 정치가에 의한 전시, 상영, 공연에 대한 폭력적 개입과 (전시장) 폐쇄로 몰아세우는 협박과 공갈에 강하게 반대해 항의한다"면서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획전의 실행위원들도 "전시 중단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아이치현 지사에게 전달했다.
소녀상을 조각한 작가 부부는 ‘소녀상 전시를 중단한 일본’ 못지 않게 ‘소녀상을 지키려는 일본’ 또한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에는 이런 분들이 소개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도 일본의 ‘진짜’ 분위기를 잘 모르는 거고요. 일본 시민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죽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희망입니다.” 김서경 작가는 ‘노(no)재팬’이 아니라 ‘노(no)아베’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은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을 맞아 대규모로 열리는 1,400회 수요집회에 참여한다. 소녀상이 세상에 나온 것이 1,000회 수요집회였던 2011년 12월 14일이었다.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토록 오래, 이토록 많은 할머니들이 세상을 등졌음에도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이들은 여전히 쉬지 않고 전세계에 소녀들을 세운다.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총도 칼도 들지 않은, 그저 굳은 다짐으로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을 뿐인, 이 무해한 평화의 상징을 힘 닿는 데까지 퍼뜨릴 겁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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