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국내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현지 한인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50대 한국 남성 사망 사건은 타살이 아닌 자살로 사실상 종결됐다. 사건 직후 타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인도네시아 경찰의 초동 수사 부실, 한국 대사관의 안이한 대처 등이 도마에 올랐지만 정반대 결론이 난 것이다. 타살 의혹의 근거들은 어떻게 자살의 증거로 바뀌었을까?
14일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경찰은 1월 21일 오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보르네오)섬 타발롱 군 무룽 푸닥 지역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국인 주재원 A(54)씨 사건을 부검 및 현장 조사를 한 결과 ‘범죄 혐의 없음’, 자살로 판단되는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 우리 대사관 관계자가 직접 결과통지서를 받았다. 대사관 관계자는 “범죄가 아니어서 수사를 중단한다는 내용만 간단하게 적혀 있다”고 말했다. 수사 종결 시점은 5월 3일이었다.
발견 당시 A씨는 자신이 머물던 숙소 욕실에서 전깃줄을 목에 맨 상태였고, 복부와 팔 등에는 흉기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다수 있었다. 사건 직후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부실한 상황 등을 보고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타살 의혹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였다. △누군가 흉기로 찌르고 벤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너무 많다 △고인의 발 크기보다 3㎝ 이상 작은 족적이 발견됐다는 일각의 주장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등이다. 이런 내용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인도네시아 경찰의 수사력을 의심하고, 대사관의 대처를 질타하는 여론이 거셌다. 한국에서 수사팀이 급파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건 현장 부근에서 일하던 한인들과 주재원들이 유사 범죄 발생을 우려하며 한동안 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수사 전문가들은 타살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뒀다. 흉기에 의한 여러 상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이 한 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하여 생긴 흔적인 주저흔(躊躇痕)에 가까웠다. 아울러 족적은 신발을 벗은 상태로 찍힌 것이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유서가 없고,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유족들의 증언엔 뾰족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현지 관계자는 “깊은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배려하다 보니 극단적인 선택으로 단정지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A씨의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됐다. 흉기에 의한 여러 상처는 사망 원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고,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지문은 모두 고인의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수사를 종결한 5월 유족에게 이 같은 사실을 간단히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종결 사유를 문서로 받기 원하는 유족들 요청에 따라 한국 대사관은 석 달 넘게 인도네시아 경찰에 협조를 구했고, 최근 영사가 현지에 직접 찾아가서 관련 자료를 받아왔다. 내용은 유족이 받은 것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경찰도 사실상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 결론 내린 상태다.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시신을 다시 부검한 결과도 인도네시아 경찰의 소견과 같았다. 우리나라 경찰은 지난달 유족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어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은 간담회 자리에서 “국과수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볼 때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이 최근 경찰에 인도네시아 경찰로부터 수사 보고서를 건네 받아 한 번 더 수사 전반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아직 수사가 완전 종결된 건 아니다. 수사 과정을 한 번 더 살피란 취지여서 수사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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