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광복절에 전혀 다른 목소리
74주년 광복절에 서울 광화문광장이 둘로 나뉘었다. 세종대왕상을 기준으로 북쪽 옛 일본대사관 방향으로는 일본 아베 정부 규탄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남쪽 서울시청 방면으로는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가 이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5일 오후 2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다시, 해방의 날, 노동자가 외치는 자주의 함성’을 주제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비옷을 입은 조합원 약 1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해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을 규탄했다.
오후 6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약 750개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한 아베규탄시민행동의 ‘8ㆍ15 아베 규탄 범국민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촛불을 든 약 10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NO 아베’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이진경(47)씨는 “정부가 더 강경하게 대응해 일본으로부터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에 대한 사죄를 꼭 받아내야 한다”며 “우리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느끼게 해주고 싶어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광화문광장을 찾은 변동구(43)씨도 “반일 이슈 등 무거운 주제를 알려주기보다는 광복절을 있는 그대로 같이 기념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도 자국 총리를 규탄했다. 다카다 겐 한일 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노 아베란 구호가 마음 아프지만 이런 구호가 나오게 한 책임은 일본시민에게도 있다"고 강조했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일본대사관을 거쳐 서울지하철3호선 안국역과 1호선 종각역, 조선일보, 서울시청까지 행진한 뒤 자진 해산했다.
같은 날 보수단체들의 일명 ‘태극기 집회’도 서울 도심을 달궜다. 우리공화당과 천만인무죄석방본부,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일파만파는 낮 1시 서울역광장 주변에서 ‘8ㆍ15 태극기 통합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무효” 등을 주장한 뒤 서울광장으로 진출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과 함께 ‘8ㆍ15 태극기 연합 집회’를 이어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광화문광장 남쪽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며 가세했다. 이들은 “문재인 하야하라” 등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주로 외쳤다.
최규정(65)씨는 “이미 판결이 난 강제동원 문제 등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과 같다”며 “문재인정부가 국민을 선동해 반일 분위기를 조성하고, 분란을 원하지 않는 국민은 친일로 몰고 있어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집회들이 광복절에 동시에 열리면서 소소한 마찰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과격한 충돌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약 1만명의 경찰력을 동원하고 집회 참가자를 분리하기 위한 펜스를 설치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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