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두부 매대가 항상 가장 많이 애를 먹인다. 새로운 제품이라도 발견해 집어 들고 자잘한 글씨의 정보(재료, 영양소 등)를 집중해 찬찬히 읽으려 들라치면 판촉 직원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A를 집어 들면 B를 가져와 더 좋다고 말하고, B를 집어 들면 A가 더 좋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셀 수 없이 많은 두부 구매의 순간에서 그들은 언제나 청개구리처럼 나의 선택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최대한 조용하고도 빠르게 목적, 즉 구매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쓴다.
요령은 다양하다. 카트를 아예 매장 다른 곳에 불법 주차해 놓은 다음 먼 발치에서 원하는 두부의 위치만 확인해 잽싸게 집어 들고 자리를 뜬다. 제품 정보를 찬찬히 읽어봐야 할 신제품이라도 들어왔다면? 카트를 끌거나 불법 주차하거나 상관 없이 두부를 고르는 동시에 다른 일도 하느라 판촉 활동에 주의를 못 기울이는 척하며 정보를 습득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장보러 가며 이어폰을 꼭 챙기는 것도 두부를 찬찬히 보기 위해서인데, 안 가지고 있다면 전화통화 하는 시늉도 충분히 효과적이다. 어떤 요령이라도 먹히지 않아 강력한 판촉 활동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면, 최대한 공손하게 ‘다음에 먹어 볼게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두부, 어디서 살까
그렇게 요령을 발휘해 사와야 할 만큼 두부는 가치 있는 식재료이다. 콩의 정수만을 굳혀 눌러 만드니 훌륭한 식물성 단백질 섭취원인 데다가 콩물의 농도나 가공에 따라 질감과 밀도가 다양해진다. 물론 두부는 집에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콩을 불려 갈아 두유를 만든 뒤 단백질을 응고시킨 뒤 틀에 떠 담고 눌러주면 된다. 눈 내리는 겨울날, 할머니가 가마솥에 삶아 맷돌에 간 콩으로 만들어 준 두부의 맛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음식의 기억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 보면 콩을 미리 불리는 등의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려 과정은 생각보다 지난한데 반해 결과물은 맛과 양의 면에서 빈약하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따라서 집에서 열심히 만들고 좌절하기보다 잘 만드는 두부를 사다가 맛있게 먹는 편이 더 즐겁고 효율적일 수 있다.
역시 이론적으로는 질감이나 밀도에 따라 아주 다양한 두부가 존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나는 두부를 구입처에 따라 나눈다. 일단 재래시장마다 하나쯤은 있는 즉석 두부 가게는 이름에 충실하게 현장에서 직접 만든 제품을 판다. ‘재료에 상관 없이 갓 만든 두부가 최고’라는 말이 있으니 시장 두부의 잠재력은 꽤 높아야 하지만 많은 경우 기술력의 부족으로 완성도가 떨어져서 안타깝다. 갓 나와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두부라면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살 가치가 충분히 있는데, 그마저도 아까운 두부를 종종 만난다.
한편 시장 두부와 비슷한 느낌의 모두부를 여러 경로를 통해 살 수 있다. 집 앞 마트는 물론이고, 동네에 따라 종을 울리며 찾아오는 트럭도 있다. 시장 두부와 비슷한 완성도에 즉석보다는 만든 지 좀 된 제품이지만 끼니 때는 되었는데 그럴싸한 반찬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 아예 주변에 적절한 식재료 구매처가 없다면 꽤 요긴하다. 대체로 간이 적당히 되어 있고 일종의 뽑기처럼 고소하고 진한 맛을 내주는 제품도 있는데,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응고제의 맛이 느껴지면서 물릴 수 있다. 시장 혹은 트럭 두부는 무겁고 밀도가 높은 편이라 돼지고기 고추장찌개에 많이 쓴다.
다음 범주로는 포장 두부가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주로 팔리는, 플라스틱 용기에 물과 함께 포장되어 팔리는 제품이다. 비닐에 한 모씩 싸여 팔리는 것들보다는 완성된 제품의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기는 한편 품질도 대체로 더 좋지만, 덮어 놓고 박수를 쳐 줄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질감도 맛도 너무 부드러운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 탓이다. 국물 음식, 특히 찌개류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부침용 제품 또한 부드러움만 강조한다.
두부, 어떻게 보관할까
말하자면 두부는 소중한 식재료이고 흔하면서도 다양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인데, 그런 가운데서도 있는 두부를 최대한 잘 활용하려면 어떤 요령이 필요할까? 일단 보관이 중요하다. 특히 달랑 비닐봉지에 담겨 팔리는 종류라면 하루 이틀 내에 쉬어버릴 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그날 만든 것을 사다가 쓰고 남은 건 밀폐용기에 물과 함께 담아 냉장 보관한다. 매일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 일주일 정도는 두고 쓸 수 있는데, 어항도 그토록 자주 물을 안 갈아준다는 걸 감안한다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수 있다. 따라서 원칙이 그렇다고 여기고 웬만하면 한 모를 한 번에 다 소모하는 게 속 편할 수 있다.
아니면 조금 번거롭지만 냉동 보관도 가능하다. 각 변을 5㎝ 안팎으로 썬 뒤 종이행주에 5~10분 얹어 물기를 걷어내고 달라붙지 않도록 종이 호일 등을 깐 접시나 쟁반에 올려 얼린다. 속까지 단단해지면 지퍼백 등에 담아 보관한다. 달라 붙지 않도록 종이 호일을 깔고 얼리려니 냉장보관하며 물 갈아주기만큼이나 번거롭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사실은 맞다. 다만 두부를 얼릴 경우 스폰지처럼 질감이 달라지는 부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고려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쓸 때는 상온에서 해동한 뒤 물기를 또 한 번 걷어내고 평소의 용도대로 쓴다.
물에 담아 보관하고 하루에 한 번씩 갈아준다. 얼리기 전에 한 번, 해동 후 또 한 번 물기를 걷어낸다. 이처럼 두부를 잘 먹는 요령의 절반은 수분 관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애초에 콩물에서 단백질을 응고시켜 걷어내는지라 조직 사이를 물이 메우고 있고, 대량생산 두부처럼 아예 물에 담근 채로 팔리는 경우라면 조금 과장을 보태 두부 반, 물 반인 수준이다. 음식을 만들어 먹어 온 몇 십 년의 세월 동안, 특히 포장 두부가 등장한 뒤부터 물기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물기는 과연 두부의 일부일까, 아니면 맛의 방해꾼일까? 두부가 담긴 물로 찌개를 끓여 보는 등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후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부의 물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음식의 맛 전체가 흐려지니 어떻게 조리하든 일단 물기부터 걷어내고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두부, 물기 어떻게 뺄까
소극적으로 접근한다면 두부는 그냥 놓아두기만 해도 물기가 웬만큼 빠진다. 특히 세워 놓으면 자기 무게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양의 물기가 배어 나오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두부라면 그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주는 게 좋다. 같은 두부라도 물기 관리에 따라 질감이 사뭇 다르게 바뀔 수 있으므로, 음식에 맞춘 요령을 살펴보자. 일단 물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삼베나 종이 행주에 감싸 물기를 뺄 수 있다. 그냥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물기를 뺄 수 있으니 모든 웬만한 두부 조리의 밑준비라고 여기자. 다음으로는 전자레인지에 살짝 익힌다는 개념으로 돌려주는 요령이 있다. 배어 나온 물기가 넘치지 않도록 오목하거나 깊은 접시에 담아 3~5분 가량 돌린다. 물기를 빼는 김에 데우기까지 할 수 있으니 두부김치처럼 생으로 두부를 먹는 경우에 요긴하다.
다음은 누르기이다. 두부김치를 좀 더 살펴보자면 만들어 먹든 사먹든 두부 한 쪽으로 온전히 들어올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역시 수분이 많고 밀도가 낮아서 벌어지는 현상인데, 눌러 물기를 빼면 물렁하고 유약한 두부가 훨씬 더 의연해진다. 천이나 종이 행주로 감싸 놓은 상태에서 두부 위에 접시를 올리면 되는데, 접시 한 장부터 여러 장, 밥공기에서 통조림 깡통에 이르기까지 무게에 따라 질감이 다양해진다. 두부 김치 수준이라면 접시 한 두 장이면 되고, 두부 조림을 위한 지짐이나 채식용 스테이크라면 통조림 깡통을 동원해 두부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도 은근히 즐거울 수 있다.
아니면 ‘불에는 불’이라 했으니 같은 이치를 따라 ’물에는 물’로 대처할 수도 있다. 다만 보통 물이 아닌 뜨거운 소금물에 데치듯 담갔다가 건져 물기를 빼면 두부가 단단해지는 대체로 부족한 간도 맞춰준다. 별 다른 조리 없이도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식재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통되는 많은 두부의 간이 약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희미한 표정을 개선해 주는 한편 부스러지는 것도 막아준다. 옷을 입히지 않은 튀김(180~190℃)이나 에어프라이어 및 오븐구이를 할 때 요긴하다. 겉이 노릇해지도록 굽거나 튀긴 두부는 겉과 속의 질감이 다를뿐더러 고소함이 한층 두드러지므로 한꺼번에 두세 모 분량쯤 만들어 냉동 및 냉장보관하면 비육류 단백질이 필요할 때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마지막으로 두부로 만들 수 있는 요리 한 가지를 살펴보자. 두부김치나 각종 찌개 등은 너무나도 익숙해 변화를 주고 싶다면 마파두부가 있다. 중식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마파두부는 의외로 만들기 쉬워 숫자를 동원한 레시피까지 소개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일단 두부 한 모의 물기를 적당히 걷어내고 각 변 1~2㎝로 깍둑설기한다. 바로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두부를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치는 것도 좋다. 논스틱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달궈 마늘, 파, 생강, 홍고추 등을 볶아 맛을 끌어낸 뒤 다진 고기를 더해 마저 볶는다. 물이나 육수를 붓고 두반장, 후추 등으로 간한 뒤 두부를 더해 뚜껑을 덮고 10~15분 보글보글 끓인다. 물과 옥수수전분을 더한 물녹말을 더해 국물이 걸쭉해지면 불에서 내린다. 얼얼한 마라의 참맛을 보고 싶다면 화자오(중국 산초)를 갈아 솔솔 뿌려준다.
무르지 않은 두부, 포두부
무르지 않은 두부라면 일단 유부(油腐)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텐데, 요즘은 포두부도 존재감을 꽤 확보했다. 두부를 눌러 물기를 완전히 뺀 포두부는 특유의 꼬들꼬들한 질감이 매력적이라 보통 두부와는 먹는 즐거움이 또 다르다. 얇고 씹는 맛이 있으니 탄수화물의 자리에 대신 들여 놓을 수 있는 단백질이다. 넙적한 상태라면 밀 혹은 쌀가루 전병을 대체할 수 있으며 채를 치면 국수처럼 취급할 수 있으니 골뱅이 무침 같은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훌륭하다. 실제로 종종 가는 양꼬치집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포두부 무침을 주는데, 양념이 바로 골뱅이 무침의 그것이다. 양파를 포두부의 두께에 맞춰 채칼로 얇게 저미는 게 핵심이며, 포두부가 혹시 질기다면 끓는 물에 1분 데친 뒤에 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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