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가 8일 타깃을 미국으로 잡았다. 워싱턴DC를 향해 “인권민주주의 법을 조속히 제정해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강경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의 손발을 묶고 뒤에서 흔드는 중국까지 압박할 강력한 버팀목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14주를 넘어선 홍콩 시위가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 정부에 맞설 새로운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홍콩 시민 수천 명은 이날 오후1시30분 도심 센트럴의 차터가든에서 집회를 열고 200m가량 떨어진 미국 총영사관까지 행진했다. 지난달 31일 시위와 비슷한 경로다. 당시 경찰 30여명은 거리로 쏟아진 시위대의 이동을 허용하면서도 미 영사관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고 맞섰지만 이번에는 차단막을 치지 않았다.
이날 집회는 기독교 예배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도, 리더도 따로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40~50대 중년 시민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나서 달라”며 “트럼프 정부가 예정대로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외쳤다.
인권민주주의 법안은 지난 6월 의회에 제출된 것으로, 미 국무장관이 매년 홍콩의 자치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점검해 미흡할 경우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1992년 정책법을 만들어 홍콩에 비자, 법 집행, 투자, 무역 등 중국과 차별화된 경제 특권을 부여해 왔다. 따라서 홍콩 시민들의 자유가 억압받는 것으로 판단돼 미국 비자 발급 금지, 자산 동결, 미국과의 금융거래 차단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면 중국으로서는 견딜 수 없다. 법안 발의 당시 중국은 ‘패권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새로운 충돌에 직면할 것”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시위대는 법안 통과 촉구 청원서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홍콩 시위는 지난 4일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철회 선언으로 한 고비를 넘었다. 14주 만에 얻어낸 값진 성과다. 하지만 정부는 △체포자 석방 △폭도 명칭 철회 △독립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 등 나머지 4가지 요구에는 요지부동이다. 따라서 법안이 통과된다면 홍콩 정부에 맞설 ‘만능 키’를 확보하는 셈이다.
홍콩 시위는 한 고비를 넘었지만 시위 장기화 여파로 홍콩 경제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주말인 7일 홍콩의 한 워터파크는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은 듯 한산한 모습이다. 영상=독자제공
실제 지난 4일 송환법 철회 이후, 7일 열린 첫 주말 시위는 뚜렷한 반향을 얻지 못했다. 공항 길을 마비시키려던 계획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된 탓이다. 일부 거리에서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긴 했으나, 재차 충돌하는 수준에 그쳤다. 다만 지난달 31일 경찰이 특수부대를 투입해 63명을 체포할 당시 3명이 숨졌다는 소문에 여론이 들썩인 건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지난 6월 시위 이후 진압 과정에서 숨진 시민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부인했다.
한편 이날 경찰은 시위 주도자 중 한 명인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을 보석으로 풀려난 지 9일 만에 다시 체포했다. 웡 비서장은 데모시스토당 성명을 통해 “절차상 실수로 보인다”며 “9일 공판 이후 석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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