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경쟁작 초청 논란 속 수상까지
‘문제적 감독’ 로만 폴란스키(86)의 새 영화 ‘장교와 스파이’가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1978년 13세 소녀를 성폭행한 전력이 있는 폴란스키는 미국 법정에서 형이 선고되기 전 해외로 출국해 ‘도망자’ 꼬리표가 붙어 있다.
베니스영화제는 7일(현지시간) 경쟁부문 시상식을 열고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장교와 스파이’에 수여했다. ‘장교와 스파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을 담고 있다. 폴란스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교와 스파이’는 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미투(MeToo)’ 시대에 맞지 않는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범죄자 폴란스키’는 오랫동안 세계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으나 큰 제약 없이 활동해 왔다. 해외 도주 이후 미 수사당국의 수배령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었고, 유명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2002년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상), 2010년 ‘유령작가’로 베를린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감독은 도덕성보다 예술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영화계에 팽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7년 할리우드에서 ‘미투’ 폭로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영화계 성폭력 추방 운동이 벌어지면서 폴란스키는 지난해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베니스영화제 수상으로 폴란스키에 대한 영화계 평가는 예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개막 기자회견에서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폴란스키 초청 논란과 관련, “예술의 역사는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들로 가득 차 있으나 우리는 그들의 작품들을 존중한다”며 “폴란스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은 이전에 폴란스키를 17세기 유명 화가 카라바조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카라바조는 (연적을 죽인) 살인자이지만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주요 화가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루크레시아 마르텔(아르헨티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경쟁부문에 포함된 것에 대해) 축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그의 영화가 영화제에 있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할리우드 영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가 차지했다. ‘조커’는 배트맨의 숙적인 악당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코미디언을 꿈꾸던 사내 아서 플렉(조아킨 피닉스)이 연약한 외톨이였다가 확신에 찬 악당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코미디처럼 미쳐 버린 세상에서 미쳐야만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악의 기원을 탐색하고 시대를 비판한다. 조커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서 영웅 배트맨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등장해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에서는 잭 니콜슨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나이트’(2008)에서는 히스 레저가 각각 연기했다. ‘조커’는 내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주요 부문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감독상(은사자상)은 ‘끝없음에 대하여’의 로이 앤더슨 감독이 받았다. 남자배우상은 ‘마르틴 에덴’의 이탈리아 배우 루카 마리넬리, 여자배우상은 프랑스 영화 ‘글로리아 문디’의 아리안 아스카리드에게 각각 돌아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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