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아르바이트(알바)를 시작하게 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 스펙 한 줄 추가하기 위해서, 그리고 데이트 비용 충당을 위해 알바를 시작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작한 알바를 통해 2030 대부분은 처음으로 을(乙)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점주와 손님에게 을을 자처하며 ‘남의 돈 버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배웁니다.
물론 알바가 항상 을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간혹 미숙한 알바생이라는 핑계로 사고를 쳐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죠. 알바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가 사회의 쓴 맛을 알아버렸다는 대학생, 회사원, 그리고 취업준비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알바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요?”
먼저 취업준비생 권진영(26)씨를 만나봤습니다. 권씨는 일본어 회화에 능통해 일본어 통역 알바 경험이 많습니다. 그가 전하는 알바라서 서러웠던 경험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어느 학회에 통역 알바를 하러 갔더니 대뜸 행사장 테이블 나르고 의자 배열을 하라고 시킨 적이 있어요. 미리 고지되지 않은 업무라 더 힘들었죠. 분명 처음 알바 공고를 봤을 때는 외국어 통역만 하면 된다고 써 있었거든요. 어차피 같은 알바생이니까 몸 쓰는 일도 좀 도우라며 일을 시켰는데, ‘나 나름 고급 인력인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일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행사장 세팅하는 알바가 필요했다면 다른 알바생을 더 고용했어야죠.”
다른 경험도 들어보시죠.
“대학 내 행사에 통역이 필요하다는 부름을 받고 갔더니 전문 통역가가 와야만 하는 행사였던 적도 있어요. ‘세계 아동 놀이’에 대해 다루는 행사였는데, 학교에선 학부생을 알바로 쓰는 게 돈도 덜 들고 편하니까 절 부른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그 날 통역에 필요한 자료도 미리 받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 통역하기엔 어려운 표현이 많아서 정말 힘들었죠. ‘이게 무슨 고생이야, 차라리 돈을 아껴 쓰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눈물 젖은 돈을 벌었죠.”
알바 업무를 아예 잘못 전달 받아서 고생을 했던 경험담도 나왔습니다. 정재형(23ㆍ대학생)씨는 모델 데뷔를 꿈꾸며 달려간 곳에서 뜻하지 않은 경호원 알바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스무살 때 있었던 일이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엔 모델을 꿈 꿔 용돈 벌이도 하고 커리어도 쌓을 겸 모델 에이전시에서 모집하는 단기 알바를 찾고 있었죠. 그러다 드라마 까메오 출연 알바 공고를 보게 된 거예요. 알바 지원을 했더니 경호원 역할이 났다면서 어디 병원으로 오라는 문자가 왔죠. ‘드디어 방송 데뷔인가’ 하는 마음에 신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 갔어요.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니 진짜 경호원 일을 시키지 뭡니까. 유니폼 차려 입고 하루 종일 응급실 앞에서 보호자 출입 제한하는 일을 했죠. 당연히 사전 고지는 없었고요.
이 얘기를 주변에 하면 다들 안 믿어요. 제가 알바 공고를 오해한 것일 거라고요. 그런데 분명 알바생을 뽑을 때 외모가 중요하다면서 1차 서류로 셀카를 받아갔고, 2차 면접에서도 모델 관련 질문을 받았어요. 아무튼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응급실 앞 경호원 알바에서 호되게 당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하루 알바로 온 줄 모르는 간호사들은 제게 ‘환자 길 안내 좀 도우라’며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너무 흥분 상태라 응급실 출입을 제한 당한 어느 환자 보호자는 제게 욕을 하면서 ‘야, 너 경호원 일해서 얼마나 버니? 월 200만원은 받니? 불쌍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생각도 나고, 괜히 부모님께 죄송했어요. 아들이 이런 소리 들었다고 하면 속상해 하시겠죠.”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취업준비생 표광남(24)씨는 쌀국수 집에서 알바생으로 일하던 시절, 멀쩡해도 ‘아픈 애’ 취급을 받았던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대학생 시절, 집 근처 쌀국수 집에서 약 1년 동안 알바를 했어요. 항상 화장을 하고 알바를 갔었는데 그 날은 늦잠을 자서 씻기만 하고 갔죠. 그런데 그 날 사장님이 ‘오늘 어디 아프냐, 안색이 안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아픈 건 아니고 알바 늦을까 화장을 못 했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대뜸 ‘손님들이 아픈 애 보면 밥이 들어가겠니. 어휴 립스틱이라도 발라라’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솔직히 음식점 알바는 깨끗하고 일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전 그날 용모 단정하게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갔었는데요. 밥을 입으로 먹지, 눈으로 먹나요.”
◇툭하면 “불매할거예요” 손님들의 갑질 아닌 갑질
요즘은 누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 의견을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습니다. 익명성도 보장되니 말에 대한 책임감은 덜어내고 의견 표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죠. 회사원 이서영(27)씨는 이런 인터넷 때문에 알바가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커뮤니티에 시달렸다는 이씨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건 제가 일했던 환경이 특수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제가 다니던 대학 앞 어느 식당에서 알바를 했었는데요. 알바생이 조금만 실수를 하거나, 손님이 가게 음식에 불만을 품으면 바로 대학 커뮤니티에 불매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그 커뮤니티 영향력이 꽤 커서 그런 글이 올라오면 실제 매출 급감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물론 소비자 피드백은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당시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을 보면 ‘알바생 표정이 별로다. 걔 보기 싫어서 다른 가게를 간다’, ‘그런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와 같이 단순 마녀사냥 식의 글이 많았어요. ‘오전 알바생은 늘 정량보다 음식을 많이 주는데, 오후 알바생은 정량 이상으로 음식을 주지 않아서 별로’라는 불만도 있더라고요. 저를 대상으로 하는 듯한 글을 보니 손님 응대하기가 무서웠어요. 그 이후로 가게에 온 손님들을 보면 내 얘기를 나쁘게 하진 않을까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악플 보고 괴로워하는 연예인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 다 이런 식이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카페 케이크에서 꼬불꼬불한 털이 나왔다’든지, ‘가게 점주가 주기적으로 손님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한다’와 같은 이야기도 있긴 했어요. 그런 글이 올라오면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정말 빠르게 퍼져서 사과문이 걸리는 가게도 많았고, 손님이 줄어서 결국 망한 가게도 있었죠.”
◇”사장님, 알바라서 죄송합니다”
‘일이 미숙해서’, ‘아직 어리고 잘 몰라서’ 등의 이유로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알바생도 적지 않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민망하다는 회사원 임정빈(26)씨는 카페 알바를 하다 음료를 즉석으로 개발하게 된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저는 손님에게 좀 어이없는 잘못을 해서 카페 사장님께 너무 죄송스러웠던 기억이 있답니다. 동네 앞에서 카페 알바를 할 때 있었던 일이에요. 제가 일했던 카페는 작았기 때문에 사장님 없이 저 혼자 가게를 봤어요. 알바 시작한 지 3일이나 됐나? 제가 음료 제조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을 때 어떤 손님이 오셔서는 생강유자차를 시키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강 가루를 못 찾겠던 거예요. 사장님께 생강 가루는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려고도 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마음이 조급해졌죠. 그래서 최대한 생강 가루와 색이 비슷한 홍차 가루를 넣어서 홍차유자차를 만들어서 드렸답니다.
카페 일이 조금 익숙해지니까 그 때 그냥 손님께 ‘다른 메뉴 주문 부탁드린다’고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당시 저는 손님 주문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그 손님이 음료를 테이크아웃 해 가셔서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저는 그 분이 다시는 우리 카페에 오시지 않을까 봐, 또 카페 음료가 맛 없다고 소문이 날까 봐 사장님께 죄송스러웠죠.”
회사원 정서호(28)씨에게서도 사장님께 죄송했다는 알바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바 무단 결근과 그 이후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무살 알바를 처음 해 봤을 때 무단 결근을 두 번 했다가 점장님께 고소 당할 뻔 한 적이 있어요.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만 그땐 어리고 철이 없었죠. 두 번이나 알바를 펑크 내니까 점장님이 저를 불러다가 녹음기까지 켜시곤 ‘고소하겠다’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너무 무섭고 죄송스러워서 그날 저녁 점장님께 그냥 알바를 그만두겠다는 문자를 보냈죠. 제가 알바를 그만두겠다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더라도 잘렸을 것 같긴 해요. 요즘 말로는 이런 걸 두고 ‘빤쓰런’(민망하거나 부끄러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고 한다면서요?”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했습니다. 알바를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렸던 2030이 피울 꽃을 응원해주세요.
정유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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