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무 환경 분노한 경찰들은 거리로 쏟아져
프랑스 파리 중심가의 경찰청 본부에서 흉기 난동으로 경찰관 최소 4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발생했다.
3일(현지시간) DPA와 A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파리 구도심 시테섬에 있는 경찰청 본부에서 한 남성 직원이 흉기로 경찰관들을 공격했다. 가해자는 경찰청의 행정직원으로 다툼 중 화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일단 파악됐다. 공격을 받은 경찰관의 다수는 여성이며, 최소 4명이 숨졌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흉기를 휘두른 남자도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몇 년 간 프랑스에서는 경찰을 겨냥한 잇단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한 바 있어 경찰 당국은 테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라고 미국 CBS 방송이 보도했다.
경찰청 흉기 난동 사건은 공교롭게도 프랑스 경찰관들이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20년 만에 최대 장외 집회에 나선 다음날 발생했다. 2일 파리 바스티유광장에서 레퓌블리크광장으로 이어지는 도심 거리는 2만7,000여명의 경찰관들로 가득 메워졌다. ‘분노의 행진’으로 명명된 시위에는 2001년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고 보도전문채널 프랑스24 등이 전했다.
법질서 관리책임자인 경찰관들을 거리로 불러 낸 1차 원인은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금개혁 등 마크롱 정부의 우향우 복지정책에 항의하는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가 주말마다 이어지면서 경찰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불과 2주일 전에도 프랑스노동총동맹(CGT) 주도로 전국에서 150만명이 참여하는 연금개혁 반대 집회가 열려 파리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여기에 프랑스 국립경찰은 미국처럼 일상적인 순찰 업무를 하지 않고 시위 진압과 갈등 중재를 전담해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갈수록 경찰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이들에게 더 큰 좌절을 안겨 준다. 경찰노조 간부인 에릭 프레몽은 “이 나라의 어느 부모도 자녀에게 ‘경찰이 돼라’고 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존중받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낮아진 사회인식 탓에 올해만 벌써 50여명의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날 시위에서는 죽은 동료들을 기리는 모형 관이 등장하기도 했다.
경찰의 집단행동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자 프랑스 정부는 급히 달래기에 나섰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경찰이 수년째 예산 삭감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서 임금 인상과 충원을 약속했다. 또 새 연금제도가 시행될 경우 경찰관도 수령액이 줄어드는 점을 감안해 퇴직연금 설계 시 직업적 특성을 반영할 계획이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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