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조원규 대표 “초개인화 AI로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 되겠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경쾌한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가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비틀스의 노래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다. 비틀스가 록 밴드라는 것을 증명한 곡이자 다른 록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이 노래는 70여명의 전 직원이 모두 모이는 전체 회의를 알리는 곡이자 회사의 테마송이다.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신생(스타트업) 기업 스켈터랩스는 사명을 비틀스 노래에서 따왔다. 설립자인 조원규(53) 대표가 워낙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동료의 아이디어로 사명을 결정했다.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시끄러운 노래를 만들기로 하고 내놓은 곡이 ‘헬터 스켈터’에요. 나선형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기구 이름인데 그만큼 짜릿한 흥분을 담았죠. 스타트업이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노래처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기 위해 사명을 지었어요. 매주 전체 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양한 가수들이 변주한 ‘헬터 스켈터’를 틀어 놓습니다.”
전문 음악인처럼 곡을 설명한 조 대표는 직접 밴드를 만들어 즐길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사무실 한 켠에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놀이방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전기기타, 드럼, 키보드 등 밴드 연주를 위한 악기를 갖춰 놓았다. 사내에 2팀의 밴드가 있으며 조 대표도 그 중 하나에 참여해 저녁이면 직접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구글은 스케일이 달랐다”
10년 이상 정보기술(IT) 업계에 몸 담은 사람들에게는 조 대표 이름이 익숙하다. 카이스트에서 AI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문자나 음성인식 등 인식 기술 전문가다. 그가 미국에서 창업한 다이얼패드는 인터넷전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스카이프보다 먼저 인터넷전화를 만들었다. 이 기술은 나중에 새롬기술이 채용했다.
이후 조 대표는 세계적 포털 구글에 합류해 2007년부터 7년간 구글코리아의 개발 총괄 사장을 지냈다. 그가 구글에 있는 동안 미국 구글의 검색 서비스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인터넷 사이트만 나열하던 방식에서 구체적 답을 내놓는 서비스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해당 사이트와 관련 인물, 문화 정보 등이 옆에 분야별로 표시된다.
당시 조 대표가 이끌던 구글코리아 개발팀에서 만든 이 기능은 전세계 구글 서비스에 적용됐다. “당시 구글코리아 개발팀은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았어요. 그때 구글은 세계 각지에 너무 많은 사무실을 만들어 이합집산하며 요동치던 시절이었죠. 구글코리아 개발팀은 구글의 핵심인 검색 개발에 손을 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이었습니다. 지금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구글 검색의 많은 기능이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구글코리아를 이끌며 잘 나가던 조 대표가 구글을 그만두고 2015년 스켈터랩스를 창업한 것은 규모의 차이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 미국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에 가서 경영진들에게 설명을 했어요. 이 사업을 하면 연간 1,000억원 정도 벌 수 있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돌아온 질문이 ‘좋은 아이디어인데 겨우 1,000억원 갖고 뭐하냐’는 것이었죠. 구글은 하루에 1,000억원 이상 벌 만큼 규모가 큰 회사였어요. 그때 나가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구글에 보고한 사업 계획으로 창업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 보고한 사업은 구글 아니면 못합니다.”
규모의 차이는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구글이 M&A 할 때 가치평가하는 방식은 일반 투자업체들과 다릅니다. 구글은 인수하려는 기업이 구글의 기존 서비스와 연동되면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봅니다. 그러니 미래 가치에 대한 산정 규모가 엄청 커지죠.”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구글의 자동화
구글에 몸 담았던 개발자들과 만든 스켈터랩스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술 회사를 지향한다. 그 중심에 AI가 있다. “구글에 있었을 때 AI를 재발견했어요. 구글은 처음부터 AI에 주력했어요. 검색 결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이나 기업에 민감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파악한 구글은 처음부터 검색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자동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했어요.”
그때 조 대표가 구글에서 배운 것이 모든 사업은 철저하게 기술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글은 어떤 사업을 하기 전에 사전 점검에서 수작업이 들어가 있으면 아예 못하게 했어요. 사람이 개입하면 주관이 반영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죠. 구글은 철저하게 자동화 기술로 사람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도록 합니다.”
자동화 결과의 중요성을 배운 셈이다. “구글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기술을 개발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사람의 철학이 반영되기를 원하죠.”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람이 책임져야 할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애플의 시리 사태로 불거진 AI의 자동학습(머신러닝)이다. 애플은 AI 서비스인 시리의 기능 개선을 위해 사람들이 시리를 이용하며 나눈 대화를 녹음한 뒤 계약직 직원들이 이를 듣고 문자로 풀어서 AI를 훈련시키도록 했다. 구글,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등 다른 AI 서비스를 하는 업체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AI가 100% 완벽할 수 없습니다. 사람보다 못 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플의 시리 사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죠. 특히 이용자의 사생활 등 민감한 정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정리해야 합니다. 민감 정보를 걸러내고 이용자가 사생활 정보 이용을 선택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점에서 조 대표는 차별화된 AI 기술을 만들어 시장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본다. “차별화는 풍부한 경험과 학문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 합니다. AI가 문제 해결을 하는 방법은 수백 가지일 텐데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죠. AI 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학문적 지식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모든 취향을 찾아내는 초개인화 AI 기술 개발
이를 위해 스켈터랩스는 우수한 개발자 확보에 힘을 쏟았다. “직원의 70%인 50여명이 개발자인데 구글의 최고 개발자들과 AI 전공자들이 꽤 많습니다. 최고의 개발자들이 얼마나 있느냐가 곧 기술 기업의 실력을 좌우하죠. 이들을 보고 다른 개발자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치열한 AI 인력 확보 경쟁 속에서도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를 입증하듯 스켈터랩스가 개발한 대화형 AI 엔진은 최근 F1 스코어를 이용한 성능 시험에서 72%를 기록했다. 정밀도와 재현율을 고려한 AI 평가 기준인 F1 스코어는 비율이 높을수록 질문자의 의도를 잘 파악한다. 반면 해외 A, B사는 65%에 그쳤다.
이들이 만든 대화형 AI 기술은 롯데홈쇼핑의 고객 상담에 적용됐다. “AI가 음성인식을 이용해 고객상담센터에서 전화상담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준비 중입니다.”
이와 함께 힘을 쏟는 분야는 초개인화 기술이다. 초개인화는 이용자가 어떤 지역에 살고 어떤 음악과 음식을 좋아하며 어디를 자주 가는 지 개인의 세세한 부분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초개인화 기술은 이용자의 기호에 맞는 맛집이나 원하는 제품을 추천하는데 유용합니다. 이를 위해 AI가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등 휴대폰의 여러 장치를 이용해 이용자의 행동을 학습하죠. 이런 게 쌓이면 이용자의 취향을 알 수 있습니다.”
AI가 개인 비서처럼 작용하는 초개인화 기술은 다음달에 개발도구가 나올 예정이다. “이미 대기업을 포함해 몇 군데 기업들과 서비스 적용 방안을 이야기 중입니다. 연내에 좋은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 최고 기술의 AI 업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조 대표는 1,2년내 해외에서도 성공하는 업체를 만들 생각이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창업했어요. 그래서 외국인 개발자가 많아요. 모든 문서를 영어로 작성합니다. 영어와 우리말이 서툰 직원들을 위해 매일 영어 및 우리말 수업도 합니다.”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 기업문화”
조 대표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려면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연봉보고 들어온 사람은 더 높은 연봉을 쫓아서 나갑니다. 인재를 확보하려면 연봉이 아닌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 대표는 대화를 많이 하도록 책상 위에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았다. 또 매주 전 직원이 간식을 먹으며 진행하는 전체 회의도 한다. 또 ‘지식 팝콘’이라는 재미있는 사내 행사도 만들었다. 전 직원이 돌아가며 일과 상관없이 각자 관심을 갖는 주제를 발표한다. “극장표 싸게 사는 법 등 재미있는 주제가 많이 나와요. 저도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발표했죠.”
조 대표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 스타트업을 위한 정부 지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정부가 기술 개발업체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스타트업 지원을 다양하게 해야 합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을 잘 받으려면 발표를 잘하고 인맥이 좋은 전담 인력을 따로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 도와주는 지원책은 많지만 두 번째 육성 단계의 지원책은 많지 않아 아쉽죠.”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