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뮬러 특검은 미국 법무부에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러시아의 공모 관계를 밝히지 못했다고 의기양양했지만, 수사 보고서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측의 선거 개입은 존재했다고 적시했다. 러시아가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퍼트리며 여론을 호도했다는 거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때도 러시아는 수십만 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동원해 봇 프로그램(자동화된 작업을 시행하는 응용 소프트웨어)을 돌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게시 글을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선택을 놓고 시름하던 영국인들은 봇이 살포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지는 꿈에도 모른 채 투표장으로 향했다. 러시아의 사이버전이 활개친 브렉시트 투표는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로, 단 3.8%P의 격차로 갈렸다.
소련이 해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고할 때만 해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작 ‘폭정’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한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신간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전 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신(新) 권위주의 광풍을 진단한다. 시발점은 러시아다. 책은 러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가장한 권위주의를 퍼트리고 있는지 생생하게 기록한다.
21세기 차르로 군림한 블라디미르 푸틴을 만든 배후에는 구 소련의 국가자산을 불법적으로 차지한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와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민주주의를 관리하고 통제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푸틴이 낙점됐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불안과 분노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불평등에 힘겨워하던 러시아 국민들에게 테러와 미국의 위협에 맞서는 푸틴은 러시아를 구원할 영웅으로 등극했다. 투표 조작, 가짜 뉴스, 연출된 테러 논란에도 러시아가 여전히 푸틴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다.
스나이더는 신(新)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데는 민주주의에 대한 과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참여와 번영이 증대하는 사회로 당연히 나아가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 즉 ‘필연의 정치학’에 매몰될 때, 국가는 영광스러운 과거, 실제로는 처참하기 그지 없는 과거의 순간들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이용해 국가를 지배하는 ‘영원의 정치학’에 너무 쉽게 이끌리고 만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ㆍ유강은 옮김
부키 발행ㆍ456쪽ㆍ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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