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철거 위험 사라졌는데 유지되는 천막 논란
최근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에 참가한 김모씨(43)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수요집회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린다. 김씨는 소녀상 바로 옆 천막에서 판매하는 배지를 1만원에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는 관련이 없었다. 김씨는 “SNS 계정으로 환불 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고 말했다.
이 천막의 현재 주인은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공동행동)이다. 28년째 수요집회를 열고 있는 정의연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처음엔 천막에 동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천막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회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정의연이 물건을 판매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탓이다.
천막이 소녀상 옆에 등장한 건 3년 전인 201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 한일 정부가 위안부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커졌다. 정의연와 공동행동을 비롯해 학생ㆍ시민단체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밤낮으로 소녀상 지키기에 나섰다.
이후 탄핵을 통해 정권이 교체됐고 종로구는 소녀상을 ‘공공지형물’로 지정했다. 훼손할 경우 재물손괴죄로 처벌받고 종로구 도시공간예술위원회 심의 없이는 임의로 철거나 이전도 할 수 없게 됐다. 소녀상이 철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정의연 등 다른 단체는 모두 철수했지만 공동행동은 여전히 모금함을 옆에 두고 천막을 유지하고 있다.
정의연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까지 더 이상 소녀상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설득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천막 철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동행동 관계자는 “최종 목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가 달성될 때까지 철거는 없을 것”이라며 “기부금 및 상품 판매 수익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뵈러 갈 때 선물을 사가는 비용이나 투쟁에 필요한 현수막 구입 등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소녀상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연)가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2011년 12월 제작했다. 이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한때 ‘한 배’를 탔던 단체 간에 불협화음이 표출된 셈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소녀상 관리는 기본적으로 정의연이 하는 거라 구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정의연이 공식적으로 천막 철거를 요청한다면 검토는 해보겠다"고 밝혔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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