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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먹고 먹히는 세상, 불평등 묵시록

입력
2019.10.1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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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8>필립 리브 ‘모털 엔진’ 

필립 리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모털 엔진’의 한 장면. 영화 속 공간 배경인 견인도시는 철저하게 계층의 삶이 분리된 수직사회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필립 리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모털 엔진’의 한 장면. 영화 속 공간 배경인 견인도시는 철저하게 계층의 삶이 분리된 수직사회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어느 봄날, 런던 시는 바닷물이 말라 버린 옛 북해를 가로질러 작은 광산 타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엄청난 파괴력의 폭탄을 주고받은 전쟁이 끝나고 3,000년이 흘렀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무한궤도가 달려서 움직이는 ‘견인 도시(traction city)’를 만들어 폐허가 된 지구를 누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이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톰이 살아가는 도시는 과거에 있었던 대도시의 이름을 딴 런던이다.

견인 도시들이 누비는 폐허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런던과 같은 큰 도시는 작은 도시를 말 그대로 잡아먹는다. 작은 도시가 가진 자원을 빼앗고, 그 도시에 살던 시민은 노예로 부린다. “큰 도시는 작은 도시를 먹어 치우고, 작은 도시는 더 작은 마을을 먹어 치우고, 작은 마을은 자기보다 더 작은 정착촌을 먹어 치우고.” 이런 모습이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톰이 살고 있는 견인 도시 런던도 계급에 따라서 철저히 상층, 하층이 나뉘어 있다. 부자는 상층 갑판의 고급 주거 지역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흥청망청 살아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난한 사람이 머문다. 상층 갑판에 사는 부자들의 사치는 하층 갑판의 가난한 사람과 범죄자, 노예의 헌신으로 유지된다.

끔찍하고 기발하다. 영국 작가 필립 리브는 ‘모털 엔진’에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런 세상을 창조했다. 얼핏 들어도 흥미로운 이 설정에 혹해서 ‘반지의 제왕’을 만든 영화감독 피터 잭슨이 제작과 각본을 맡아서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안타깝게도 영화는 소설만 못하다). 리브의 ‘모털 엔진’은 ‘사냥꾼의 현상금’ ‘악마의 무기’ ‘황혼의 들판’으로 이어지는 ‘견인 도시 연대기’의 첫 편이다.

그런데 ‘모털 엔진’에서 묘사하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다. 그렇다. 이 소설은 지금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불평등’을 입체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잡아먹는 모습은 서울 같은 대도시가 지방 도시로부터 자원과 사람을 빨아 대서 ‘지방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를 연상시킨다(공간 불평등).

신분과 그에 따른 부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견인 도시의 상층과 하층 갑판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모습은 갈수록 심해지는 ‘계층 불평등’을 상징한다. 상층 갑판에서 살아가는 상위 20%의 상류층은 좋은 일자리, 양질의 교육 거기다 빼놓을 수 없는 비싸고 쾌적한 주거 공간까지 독점하며 살아간다(계층 불평등).

더욱더 심각한 일은 ‘모털 엔진’의 세상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공간 불평등’과 ‘계층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겹쳐지고 있다. 상위 20% 상류층은 대부분 부와 기회(일자리)가 몰리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간다. 반면에 중하위 80%는 일자리가 사라져서 더욱더 살기가 팍팍해지는 변두리를 전전한다.

이런 불평등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모털 엔진’에는 견인 도시 자체를 거부하고 땅에 뿌리내리며 새로운 정착을 모색하는 저항 세력(‘반 견인 도시주의자’)이 있다. 주인공 톰도 사연 많은 또래 소녀 헤스터와 함께 견인 도시 런던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한다. 먹고 먹히는 견인 도시 위에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모털 엔진’으로 시작하는 네 편의 ‘견인 도시 연대기’는 리브의 데뷔작이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화제가 되면서 리브는 곧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흉한 외모를 가졌지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여주인공(헤스터 쇼)은 내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접한 가장 멋진 히로인이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모털 엔진 

 필립 리브 지음ㆍ김희정 옮김 

 부키 발행ㆍ436쪽ㆍ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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