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박나래가 전 세계 190여 개국의 문을 두드렸다.
오롯이 자신만의 입담으로 꾸민 무대다. 국내 ‘대세’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한 도전에 날개를 단 박나래의 행보가 실로 놀랍다.
박나래의 첫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이하 ‘농염주의보’)가 지난 16일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됐다. ‘농염주의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 스페셜 공개에 앞서 지난 5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 6일 서울 앙코르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국내 여러 지역에서 관객들을 만나왔던 바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를 중심으로 ‘나래바’ 박 사장 이미지로 현직 여성 코미디언 가운데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왔던 박나래는 이번 공연을 통해 방송에서는 미처 다 공개하지 못했던 농도 짙은 ‘19금’ 경험담을 예고해 큰 화제를 모았다. 박나래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티켓 파워로 이어졌고, 공연은 매 회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공연 현장의 분위기 역시 뜨거웠다. 이달 초, 기자가 직접 관람한 ‘농염주의보’ 공연은 박나래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상상을 뛰어넘는 농염한 코미디가 더해져 후끈함을 더했다.
당시 박나래는 “오는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해당 공연이 콘텐츠로 공개된다”며 “높은 수위 때문에 콘텐츠가 공개되는 날이 은퇴를 하는 날인줄 알았는데, 다행히 방송 심의에 맞춰 편집돼 제공될 것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여전히 걱정 중이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방송판 ‘농염주의보’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많은 이들의 기대 속 콘텐츠 형태로 재탄생한 ‘농염주의보’는 2시간 30분여간 진행됐던 공연과는 달리 약 60분 분량으로 편집돼 방송적으로 압축된 재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현장 공연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애드리브는 다소 편집됐지만, 짧아진 러닝타임에도 박나래의 첫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지향했던 ‘농염한 19금 코미디’의 핵심은 그대로 담겼다.
박나래는 ‘농염주의보’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넘나드는 성과 연애, 성형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자신을 둘러싼 연예계 지라시까지 다양한 주제를 허심탄회하게 다뤘다. 여기에 “여자가 뭐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인데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살아서 뭐하냐. 그냥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많이 한 거 창피한 거 아니다. 못 하는 게 창피한 거다”라는 그의 당당한 마인드와 거침없는 태도는 이 같은 이야기들을 비호감이 아닌 호감형 ‘걸크러시’ 코미디로 완성시켰다.
‘농염주의보’ 공연 기획 및 연출을 담당했던 컴퍼니상상의 김주형 PD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공개 이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콘텐츠 형태로 편집, 공개된 공연에 대한 만족감을 전했다.
김 PD는 “박나래 씨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시청한 뒤 상당히 만족했다”고 덧붙인 뒤 “공연 때부터 굉장히 만족해 왔었고, 여건만 된다면 공연도 더 하고 싶어 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코미디 무대에 선다는 게 모든 코미디언들의 소망이지 않나. 때문에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습하고 실연을 거치며 준비해 왔었다”고 박나래의 노력을 극찬했다.
이어 “앞서 (박)나래 씨에게 농담처럼 ‘공연 이후 은퇴만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막상 본인은 혼을 불사르고 나서도 ‘뭐 어때’라는 마인드를 항상 기반에 가지고 있더라”며 “코미디라는 게 본인의 스토리를 정확히 풀어냈다기 보다는 과장이나 반복을 더해서 가공한 거니, 즐기시며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시청자들에 대한 당부를 전했다.
국내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농염주의보’는 이제 전 세계 190여 개국의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다. 아시아권부터 영미권, 유럽, 중동 등 다양한 문화권의 불특정 시청자들을 만나게 되는 만큼, 다소 높은 수위의 토크가 각 나라별로 전달되는 방식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증이 모였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 측은 “‘농염주의보’의 경우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동일한 콘텐츠가 공개됐다”며 “수위 때문에 국가별로 편집이 달라진 부분은 없다”고 전했다.
김 PD는 “박나래라는 한국의 여성 코미디언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되고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다(多) 국가 다(多) 콘텐츠 제공 플랫폼의 성격과 취지를 지키기 위해 각 콘텐츠의 조회수 등 개별적인 성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내부에서는 ‘농염주의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내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인 분위기는 ‘농염주의보’를 향한 반응이 좋은 것 같다는 반응이다”라며 “‘농염주의보’가 16일 공개된 이후 기록한 구체적인 수치 자체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생애 첫 스탠드업 코미디쇼 도전을 통해 ‘대세 예능인’으로서의 활약을 넘어 자신의 뿌리인 코미디언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뽐낸 박나래다. ‘농염주의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 이어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는 그녀의 도전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그녀가 그간 거의 대부분의 국내 코미디언들이 걷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여성, 남성 코미디언을 통틀어 ‘농염주의보’에서 다뤄진 것처럼 수위 높은 자신의 경험담을 코미디로 풀어냈던 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몇몇 코미디언들이 이 같은 시도를 했지만, 매번 ‘비호감’이라는 타이틀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박나래는 재치 있는 입담과 ‘선’을 지키는 코미디로 공연은 물론 콘텐츠의 성공까지 이끌어 냈다.
김 PD는 “박나래 씨는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말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더라”며 “이것이 절대적 자신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 역시 연예인이기 이전에 똑같은 사람으로서 ‘다들 겪는 이야기지 않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더라. 그게 보는 이들의 통쾌함을 건드렸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수습을 잘 함으로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코미디로 승화를 시켰다. 코미디언으로서 굉장히 성숙한 점이고, 그게 바로 다년간의 무명 기간에서 오는 구력이 아닐까 싶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박나래와 ‘농염주의보’가 일궈낸 성과는 그녀의 역량을 입증하는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다소 침체돼 있는 국내 코미디의 다양화, 확장성에 대한 기대를 도모하는 계기가 됐다.
점차 설 자리가 줄어들며 ‘버라이어티 예능’의 그늘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코미디언들이 스탠드업 코미디로 대표되는 신선한 콘텐츠와 TV를 넘어선 다양한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며 다시금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 수 있을지. ‘농염주의보’가 쏘아 올린 신호탄이 긍정적 흐름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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