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스타트업리포트]”이연복 등 유명 셰프가 입어 조리복의 에르메스 됐어요”

입력
2019.10.28 04:40
20면
0 0

 고급 조리복 전문 제작 ‘븟‘ 

 <16회>배건웅 대표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행복 대신 일하는 재미를 찾았다” 

“붓이 아닙니다. 븟이에요. 부엌과 함께 주방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저는 어려서 할머니한테 ‘븟간에 가서 뭘 좀 가져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익숙한데,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들리나 봐요.”

배건웅(37) 대표는 만나자마자 사명부터 설명했다. 그만큼 낯선 사명이다. 그가 이끄는 븟은 요리사들이 입는 고급 조리복을 전문으로 만드는 독특한 신생(스타트업) 기업이다. 이연복, 최현석, 오세득, 박준우 등 TV에 등장하는 유명 요리사들은 대부분 븟에서 만든 조리복을 입고 나왔다.

수 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 왜 하필 조리복을 택했을까. 거기에는 배 대표의 남다른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

조리복을 만드는 독특한 스타트업인 븟의 배건웅 대표가 “노동자들을 지켜주는 옷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조리복을 만들었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조리복을 만드는 독특한 스타트업인 븟의 배건웅 대표가 “노동자들을 지켜주는 옷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조리복을 만들었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전자레인지 덕분에 꾸게 된 요리사 꿈

그는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사온 전자레인지를 보고 요리사의 꿈을 키웠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간단한 요리법 책자를 보고 따라 해봤어요. 가족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요리에 매력을 느꼈죠.”

그 때문에 집안에 사단이 났다. 멀쩡하게 공부하던 아들이 갑자기 공고를 가겠다고 진로를 바꿨다. “당시 요리를 가르치는 고교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녁에 따로 요리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인문계 고교는 야간 자습 때문에 학원을 다닐 수 없었어요.”

공고에 진학 후 배 대표는 식당, 호텔 뷔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주방 허드렛일, 설거지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때 두 가지 큰 일이 동시에 닥쳤다.

대입 수학능력 시험 전날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배 대표는 정신 없이 수능과 장례를 한꺼번에 치르고 나서 쓰러졌다. 임파선이 주먹만큼 부어 오르며 온 몸이 열로 펄펄 끓었다. 대형 병원에 찾아갔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수술로 한쪽 임파선을 떼어내고 나서야 그 병이 흔치 않은 기쿠치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임파선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 부어 오르며 고열과 통증을 유발하는 병이다. 원인을 알았으면 항생제만 먹어도 치료할 수 있는데 원인을 몰라 수술까지 받았다.

힘들게 병을 이겨내고 요리를 계속 하기 위해 대학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했고 군에서도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대학을 마친 후 그는 미국의 유명 호텔 모히건 썬 인턴 선발에 1등으로 합격해 유학을 갔다. “세계적인 요리사 토드 잉글리시가 주방장으로 있는 호텔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투스카니’에서 1년간 일했어요.”

인턴을 마칠 무렵 기쿠치병이 재발했다. 미국서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귀국해 치료를 하며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요리 유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낮에는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 일을 했다. 병이 호전되자 29세 나이에 이탈리아 파르마에 있는 유명 요리학교 알마로 다시 유학을 떠났다. 알마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해 유명한 현지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국내에 자리를 잡기 위해 다시 귀국했다.

배건웅 대표는 “조리복을 넘어서 다양한 작업복을 만드는 전문업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븟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형기 인턴기자
배건웅 대표는 “조리복을 넘어서 다양한 작업복을 만드는 전문업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븟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형기 인턴기자

◇”팔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요리사에게 닥친 사형선고

국내에서는 유명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일하며 실험적인 요리를 여러 가지 개발했다. 그러던 중 2013년에 호사다마(好事多魔)처럼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빗장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먼저 당했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 받고 퇴원하던 날 배 대표의 인생을 바꾼 끔찍한 교통사고가 또 일어났다. “임신한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했는데 과속하던 다른 차량이 와서 받았어요. 차가 반파될 정도로 큰 사고였죠.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요. 아내도 다치지 않았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수술을 받았는데 신경을 다쳐 요리사로서는 생명과 같은 오른팔을 쓸 수 없게 됐다. 끊임없이 팔이 저리고 아픈 다발성 통증장애 증후군까지 찾아와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됐다. “팔이 아픈 것보다 평생의 꿈을 잃어버리게 돼 며칠을 펑펑 울었어요. 세상이 끝난 것 같았죠.”

재활을 한 덕분에 많이 좋아졌지만 배 대표는 요리를 할 수 없는 요리사가 됐다. 그래도 그는 아내와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며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것이 조리복 개발이었다. 익숙했던 것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 “해외 유학 시절 우수한 해외 명품 조리복을 많이 보면서 왜 한국에는 이런 조리복이 없을까 늘 의아했어요.”

당시 국내에는 1만~3만원짜리 조리복만 있었다. 배 대표는 2014년 사무실을 내고 해외에서 입었던 명품 조리복을 떠올리며 직접 조리복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옷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원단을 만드는 업체에서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옷 만드는 일을 처음부터 배웠어요. 하루 16시간씩 주 6일을 일했죠. 그런데도 맨 처음 개발한 조리복은 제대로 만들지 못해 2,000만원 가량의 시제품을 모두 버렸어요.”

그때 배 대표에게 힘이 돼 준 것은 요리 관계자들의 모임이었다. 2014년 사업을 시작하며 요리사들을 위한 비영리 모임도 함께 만들었다. “요리사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도 하고 요리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 등을 했죠. 6년째 운영하는데 5,000명 가량의 요리 관계자들이 참여했어요.”

이 모임에 참여한 요리사들 사이에 배 대표가 만드는 조리복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요리사들은 기꺼이 조리복 개선에 대한 의견을 줬다. 이를 반영해 그가 만든 조리복은 요리사들에게 맞춤옷처럼 편하고 실용적이었다. 덕분에 상하의와 모자까지 합쳐 20만원 가량하는 그의 조리복은 불티나게 팔렸다. “한 번 구입한 요리사들이 다시 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칭찬하는 글들을 올렸죠. 덕분에 광고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유명해져서 ‘조리복의 에르메스’가 됐어요. 요리사들은 븟이 만든 조리복 오른팔에 붙어 있는 숟가락 젓가락 상징을 바로 알아봐요.”

유명한 박준우 요리사가 븟의 조리복을 입고 요리를 하고 있다. 븟 제공
유명한 박준우 요리사가 븟의 조리복을 입고 요리를 하고 있다. 븟 제공

◇요리사 경험을 녹인 독특한 조리복, 이런게 다르다

배 대표의 조리복이 잘 팔리는 이유는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제작됐기 때문이다. “우리 옷의 동정을 살린 한국적 디자인을 택했고 팔이 긴 해외 조리복과 달리 우리 체형에 맞게 소매 길이를 조절했어요. 반면 앉았을 때 허리춤이 드러나지 않도록 전체 길이를 늘렸죠.”

뿐만 아니라 요리사 경험이 없으면 알기 힘든 것들을 반영해 독특한 조리복을 만들었다. “조리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에요. 조리복은 일반 단추를 달면 안돼요. 뜨거운 물이나 기름이 튀었을 때 바로 벗으려면 똑딱 단추를 달아야죠. 지퍼 조차도 그냥 양쪽으로 잡아채면 쉽게 벌어지는 ‘퀵 프리 지퍼’를 달았어요. 그러면서도 망가지지 않아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배 대표의 철학은 조리복에도 반영됐다. “원가가 3배 이상 비싼 지퍼와 단추, 원단을 사용합니다. 치밀하게 바느질을 해 땀이 높고 두껍지만 가벼운 고급 원단을 사용합니다. 이 원단은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구김이 가지 않아 세탁을 자주하는 요리사들이 좋아하죠. 또 등쪽에 공기가 통하도록 그물 형태로 만든 원단도 조리복에 최초로 사용해 더운 주방에서 덜 힘들게 일할 수 있어요.”

특히 배 대표는 요리사들이 조리복을 입으며 가졌던 불만인 변색을 해결한 조리복을 내놓았다. “요리사들은 독한 락스를 이용해 주방 바닥 청소를 해서 락스가 튄 조리복 부분이 얼룩지며 변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색깔이 빠지지 않는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좋아요.”

언뜻 보면 작은 차이 같지만 요리사들에게는 큰 변화였다. 덕분에 븟의 조리복은 연간 2만벌 이상 팔린다. 회사 살림을 챙기는 김준하 이사 등 6명의 직원이 연간 8억원 이상 매출과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올린다. 지금까지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고 이룬 성과여서 놀랍다. 그런데도 배 대표는 만족하지 않고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연구 개발에 재투자한다. “매년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불어 븟은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조리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업복을 만드는 전문 작업복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회사를 개편할 방침이다. “사명도 븟워크웨어컴퍼니로 바꾸고 농부, 목수, 공방 종사자, 육아보육사, 꽃장식 전문가(플로리스트)들에게 필요한 작업복을 내년부터 판매할 계획입니다.”

배 대표는 전문 작업복인 만큼 기능과 소재에 공을 들일 생각이다. 독특한 소재도 벌써 찾아놓았다.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은 일정 기간 지나면 폐기하는데 불에 타지 않고 방수가 되는 이 원단을 재가공 할 계획입니다. 대신 수익금 일부를 소방관들을 위해 쓰도록 기금으로 돌릴 생각이에요.

내년에 처음 나올 농부복은 10만원 넘는 가격을 예상한다. “작업복을 비싸게 만들 필요가 있냐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는 노동을 천대하는 생각입니다. 노동자를 지킬 수 있도록 안전과 기능을 강화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배 대표는 작업복에 최신 패션 경향인 하이프(HYPE)를 녹여 넣을 계획이다. “변화무쌍하면서도 고유의 가치를 살리는 디자인을 통해 중고 제품 조차도 비싸게 팔릴 수 있는 디자인이 하이프”라고 그는 정의했다.

과연 조리복을 만드는 배 대표는 요리사를 대신할 행복한 꿈을 찾았을까. “요리를 못하게 된 아쉬움이 워낙 커서 행복하지는 않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이미 지났어요. 그렇지만 요즘 하는 사업은 재미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할 겁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