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지하철 요금 인상’ 레바논 ‘왓츠앱 세금’ 도화선
NYT “소수 정치 엘리트의 독식에 반발” 조국 사태 함께 보도
세계 곳곳의 거리가 시민들의 분노로 들끓고 있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인상이, 에콰도르는 유가 보조금 폐지가, 레바논은 메신저 왓츠앱에 대한 세금이 도화선이 됐다. 중미 아이티에서는 대통령의 횡령 비리로 1년 전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최근 다시 격해지고 있다. 이들 시위의 출발점은 모두 제 각각이지만, 핵심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공통적으로 자리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과 관련, “회복 불능으로 부패했거나, 절망적으로 불공정하거나 혹은 둘 다인 정치 엘리트 계층”에 끝없이 좌절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빈부격차로 인해 그간 축적돼 온 분노가 ‘사소한 생필품’ 문제에서 폭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벌어진 시위들의 출발점은 비교적 사소했다. 칠레에서는 지난 7일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촉매제가 돼 시위가 발생하면서, 현재까지 15명이 숨졌다. 방화와 상점 약탈이 이어지자 칠레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레바논에서는 왓츠앱 등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이용자에 하루 20센트 세금을 부과한다는 발표에 일주일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 시위를 두고 NYT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모인 불특정 다수가 대규모로 거리 시위에 나섰다는 것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유사한 패턴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 민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 제도와 뻔뻔스럽게 만연한 부정부패, 젊은 층이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소수 정치 계급은 부를 독차지하는 현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 뉴욕포스트(NP)는 22일자 “전 세계의 ‘없는 자들’이 빈부격차에 들고일어났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의 ‘조국 사퇴 시위’를 앞세워 칠레ㆍ레바논ㆍ아이티 시위 사례와 함께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NP는 ‘조국 사태’를 “가진 자(haves)와 없는 자(have-nots)들 사이의 간극”이 응축돼 폭발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또 미국판 ‘스카이캐슬’로 불린 초대형 입시비리 사건과 ‘조국 딸 부정입학 논란’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거리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도 전했다.
최근의 대규모 시위 확산은 극적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광장 정치’가 꾸준히 증가세를 그려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NYT는 그 이유를 두고 “민주주의의 확산이 정체되면서, 시민들은 응답 없는 정부에 지쳤고, 시민활동가들은 거리 시위만이 변화를 만들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동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그는 미국과 영국처럼 선거가 결정적인 나라에서는, 낡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반이민 성향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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