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18)] 부모님과 호주 자유여행 1편
이번 장기 여행 중 개인 사정이 생겼다. 함께 하던 탕탕은 호주 여행을 급히 접고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다. 졸지에 난 퍼스에서 (일시적) 과부 신세가 됐다. 좋게 말하면 ‘한 달 살기’의 행운을 얻은 셈이다. 그사이 뒤늦게 효녀 노릇을 한다고 엄마와 통화했고, ‘어쩌다가’ 나온 한 마디가 불씨가 됐다. ‘부모님과 여행하기’라는 우주적 프로젝트 말이다.
“두 분, 호주에 와도 참 좋겠다.”
입버릇처럼 ‘언젠가’라는 단서를 붙였는데, 그건 불확실한 미래였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가정(假定)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이미 호주의 캥거루를 만나는 상상을 불어 넣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이 괜찮을 것 같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라났다. 평소 ‘부모님 공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쯤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억하건대, 부모님과의 첫 여행은 7년 전 일본이었다. 그해 두 분의 연세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고, 첫 해외 나들이였다. IMF 위기를 넘기며 네 자식 키우느라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엔 패키지 여행이었다. 온천 투어로 가닥을 잡은 홋카이도 패키지엔 가이드는 물론 편하게 이동할 관광버스가 있었고, 식당에 가기만 하면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난 부모님과 호주 ‘자유여행’을 감행했다. 당신의 막내딸이자 가이드요, 때론 기사이자 친구가 되어야만 했다. 과연 잘 해냈을까? 두 분과 12일 여행 후 내린 결론은 ‘이제껏 나는 부모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격이냐 편의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호주는 알다시피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나라다. 동서로 약 4,000km, 남북 3,860km에 달한다. 종단이든 횡단이든 서울과 부산 사이를 열 번도 넘게 달려야만 막바지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간은 냉정하다. 부모님의 스케줄에 따라 10여일의 여유가 주어졌다. 시드니와 멜버른 두 도시를 기점으로, 항공편에 따라 유동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예약 당시 한국과 호주를 잇는 직항은 시드니와 브리즈번 뿐이었다(현재는 멜버른 노선이 개재됐다). 환승 노선은 대부분 홍콩이나 말레이시아를 거친다. 환승 경험이 없는 부모님을 고려해 시드니 직항 항공편을 알아보았으나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다. 멜버른 왕복 항공 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 내가 머물고 있는 서쪽 끝 퍼스에서 동쪽의 두 도시로 가는 항공료 역시 만만치 않았다. 통장 잔고를 생각하니 점점 퍼스와 멜버른만 도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시드니는 그냥 건너뛸까? 그러고도 싶었으나 부모님을 고객으로 모시는 이 여행에는 특별한 조건이 붙는다. 두 분이 한국에 돌아가 벗들에게 나눌 자랑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한국인에게 호주 하면 시드니이고, 심지어 수도로 오해하는 그 세대(사실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다)에게 오페라하우스를 보지 못했다는 건 호주 여행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첫 호주 여행이니 뺄 수 없는 일정이다.
액운도 좀 끼었다. 여행 시기가 딱 호주의 방학 시즌인 데다 중국의 국경절까지 겹쳐 국내선 항공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결정의 순간, 결국 직항을 포기했다. 국제선과 국내선을 멀미 날 정도로 검색한 결과 ‘빡센’ 일정이 잡혔다. 인천-퍼스-시드니-멜버른-인천 행이다. 도시마다 한 숙소를 정해 3일 밤을 묵는다. 부모님은 넓고 다른 호주를 몸서리치게(?) 맛볼 기회가 될 것이고, 절반 수준으로 항공권을 구입했으니 나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너무 스파르타식인가?
인천에서 부모님을 태운 퍼스행 비행기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한다. 멜버른에서 인천으로 돌아갈 땐 로얄 브루나이 항공을 이용해 브루나이의 반다르스리브가완을 들른다. 이 여정에서 나도, 부모님도, 다른 아들딸도 딱 한 가지 동일한 걱정이 있었다. “과연 환승을 잘할 수 있을까?”
동선과 비용 고려, 가성비 좋은 숙소 구하기
자, 도시가 정해졌으니 숙소를 구해야 했다. 이때 탕탕과의 온도 차가 확연해짐을 느꼈다. 부모님과의 여행이니 ‘안전’은 기본이요, ‘위생’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문 분야인 배낭여행자 숙소가 아닌 호텔로, 시내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청결해야 한다.
일단 퍼스에서는 안심했다. 현재 머물고 있는 에어비앤비의 옆 방을 예약하면 될 일이었다. 퍼스는 작지만 큰 도시다. 시내는 손바닥만하지만 볼거리는 외곽의 사방으로 뻗어 있다는 뜻이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만, 성질 급한 한국인의 맘처럼 빨리 연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내보다는 외곽의 마당 있는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하루 약 4~5만원 정도면 보험까지 포함한 렌터카가 든든한 발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머문 놀라마라(Nollamara)의 숙소는 단출하지만 깨끗하고, 무료 주차가 가능한 마당을 확보하고 있었다.
시드니와 멜버른 숙소 찾기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이동 거리에 구애 받지 않도록 차를 빌릴까? 안될 말이었다. 도시 규모에서 1ㆍ2위인 시드니와 멜버른은 퍼스에 비해 시내 범위가 넓다. 도로가 꼬여 있고 호텔조차 주차비를 따로 받는 경우가 있다. 도심일수록 주차 인심이 야박하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공짜로 주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관광 명소 역시 별도의 주차 시설이 없어 인근 도로에 차를 대고 시간당 주차비를 내야 한다. 차를 가진 게 죄로 느껴질 정도다. 렌터카는 미련 없이 포기했다.
일단, 도심에서 5~10km 범위의 숙소를 중심으로 살폈다. 3명이 머물 트리플룸으로 15~20만원대라는 기준을 세웠다. 여러 호텔 예약 사이트의 프로모션을 노렸고, 눈이 빨개지도록 이용 후기와 평가를 읽었다. 이동 수단은 공유경제 플랫폼을 대폭 활용하기로 했다. 시드니에선 우버(Uber)를, 멜버른 시내의 무료 트램 외곽에선 이 지역에 특화된 디디(DiDi) 콜택시를 주로 이용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보니 부모님과 여행인데 왜 이리 ‘짠내’나게 계획했는지 스스로 반문하지만, 장기여행자의 통장은 한계가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깨우친 것 중 하나는 분명했다. 돈이 없으면 제대로 시간을 투자하라고.
항공편과 숙소를 정했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진짜 여행인 10일간의 일정은 텅 빈 채 남아 있었다. 잠자고 있던 파워포인트를 열었다. 기록하기로 했다. 며칠간 ‘검색’의 노예로 살다 보니 스스로 헷갈려 확인과 정리 차원에서도 필요했다. 문서엔, 현명하지만 영어를 배운 적 없는 부모님이 낯선 공항에서 환승해 호주로 넘어 와야 한다는 과중한 미션도 포함돼야 했다. 모 여행사의 패키지를 본보기로 삼고 10일의 여정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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