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중 靑ㆍ국방부 등 잇달아 방문해 대화
美의 인도ㆍ태평양전략 관련 긍정적 언급
우려했던 결정 철회 압박은 없었다. 아시아 순방 일환으로 방한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6일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등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을 두루 만났지만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23일 종료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은 비중 있게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정석환 국방정책실장을 만나러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들어가다 ‘(오전에 외교부 등에서 한국 당국자들과) 지소미아 관련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을 기자에게서 받은 스틸웰 차관보는 “환상적인 논의(fantastic discussions)를 오늘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언급된 논의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간 협력 동향을 정리한 ‘설명서’(Fact Sheet)의 내용에 대해서였다. 한미는 2일 태국 방콕에서 외교차관보 회의를 열어 해당 설명서를 채택했다. 고의든 아니든 민감한 주제를 피해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당초 방한 전에는 스틸웰 차관보가 한일 지소미아를 연장하라는 압력을 한국 측에 넣을 거라는 예상이 대체적이었다. 한미일 안보 공조를 흔들어 자국의 안보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8월 한국 정부의 종료 결정 이후 줄곧 미국이 불만을 토로해온 데다 지난달 26일 도쿄(東京) 기자회견에서 스틸웰 차관보가 직접 “지소미아는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도 유익하다”며 종료 결정 재고(再考)를 사실상 촉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 당국자들에게 지소미아 연장 압력으로 느껴질 만한 언급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이뤄진 강경화 장관과의 면담 때는 지소미아 언급이 아예 없었고 이어진 조세영 제1차관과의 회동에서 거론되기는 했지만 압박을 주고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주로 조 차관이 한일 사이 현안이나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스틸웰 차관보는 듣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오히려 공개석상에서는 유화 발언이 나왔다. 스틸웰 차관보는 외교부 장ㆍ차관을 예방한 뒤 약식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고무됐다”며 “이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지를 (미국이) 주시하던 도중 나온 고무적 신호(encouraging sign)”라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4일 태국 방콕에서 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만나 11분간 환담했다.
사실 미국이 압박해도 현재 우리 정부가 수용으로 해석될 법한 전향적 태도를 보일 수 없는 형편이다. 아직 지소미아 종료(23일 0시)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보복성 수출 규제 강화 조치의 철회를 이끌어낼 대일(對日)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하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만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스틸웰 차관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는 질문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소미아와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협상 등 한미동맹 현안이 구체적이고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협의됐다”면서도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이 수출 규제를 했기 때문이고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미국도 알고 있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압박을 느끼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 미국이 연장을 바라는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임박해서다. 출구 모색 정황은 감지된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주말 방미, 한미일 정보기관 관계자 회동을 한 뒤 한일 정상 환담 등이 성사되고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직접 지소미아 복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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