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적 문화 운동 연구를 주도해온 계간지 문화과학이 2019년 겨울호로 100호를 맞는다. 전통적 잡지 시장의 쇠퇴 속에서도 문화과학은 1992년 창간 이래 27년 동안 우리 사회에 한발 앞서가는 담론을 제시하며, 진보 진영 학문공동체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초의 문화이론 전문지를 표방한 문화과학은 1980년대 당파성을 띤 계급 투쟁 중심 문예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발행인이자 1기 편집인인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학장은 11일 통화에서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으로 기존 운동권의 동력이 확 줄어들었고, 학문적으로는 1980년대 사회과학 시대에서 1990년대 문화이론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기를 겪으며 새로운 문화 운동 담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해 잡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과학이 제시한 화두는 혁신적이었다. 1만5,000부를 찍었던 창간호 ‘과학적 문화론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언어, 욕망, 육체, 공간 등의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시도는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미적 상상력으로 사회를 설계해보자는 문화공학, 문화사회, 사회미학 개념도 제일 먼저 소개했다. 2기 편집인 체제로 전환된 70호부터는 동물문화연구, 4ㆍ16 재난의 시간, 페미니즘 2.0, 미투정치, 플랫폼자본주의, 인류세 등 문화이론을 넘어선 다양한 사회 현상을 조명하며 학계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현실 참여의 장도 넓혀 나갔다. 문화연대, 맑스코뮤날레, 민중의 집 등은 문화과학을 모태로 생겨난 시민단체이자 학술행사다.
100호 주제는 ‘인간의 미래’다. 2기 편집인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과학이 항상 골몰했던 주제는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인공지능(AI)과 혐오 등 인간을 둘러싼 안팎의 시대 변화 흐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말했다. 문화과학은 101호부터는 3기 편집인(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현선 서강대 HK연구교수) 체제로 새 진용을 꾸린다. 30일에는 100호 발간 기념 심포지엄도 서강대에서 개최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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