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잊어선 안 될 흑역사들
※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기업 및 지자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자생력을 찾아야 할 때란 평가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 연중기획 ‘붐 업! K리그’에서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합니다.
길고 긴 어둠을 벗어난 K리그 인기는 올해 뜨겁게 타올랐다. 지난달 초 유료관중 2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역대 최다 평균관중(1부리그 기준) 기록을 넘길 기세다. “누가 K리그 보냐”며 놀림 받던 시절을 견뎌낸 팬들이 소중하게 지켜온 흥행 불씨가 모처럼 피어났다. 한 골 먹더라도 두 골 넣겠다며 공격 축구를 선언한 지도자, 한 발 더 뛰는 최상의 플레이로 헌신한 선수들, 관중 한 명의 마음이라도 잡겠다고 동분서주한 구단 직원들, 프로축구연맹 직원들의 끊임없는 부채질이 흥행을 살려낸 셈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까지 큰 인기를 끌던 K리그는 어느 순간 끝 모를 추락으로 이어졌다. 2011년 불거진 선수들의 승부조작사건 이후 2013년 전북, 경남의 심판 매수사건, 2015년 경남의 외국인 선수 계약비리 사건까지 겹치며 K리그의 신뢰는 무너졌다. K리그의 인기가 날개 없이 추락하는 건 한 순간이란 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들이다.
한 번 깨진 거울처럼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2011년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져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된 최성국(36)은 지난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셀프 해명’에 나섰다가 되레 축구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대다수 구단이 과거 수년에 비해 높아진 흥행성적표를 받아 든 11월, 구단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단장들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단장들은 어렵게 쌓은 신뢰와 인기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 K리그 역사에 남은 ‘흑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본보가 이달 초 K리그1(1부 리그) 12개, K리그2(2부 리그) 10개 구단 단장 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K리그에서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사건’을 묻는 설문조사에 응답한 20개 구단(경남ㆍ안산 단장은 무응답) 단장들은 각 문항에 고른 점수를 매겼다.
본보가 단장들에게 △심판매수 △승부조작 △음주운전 등 선수들의 범죄행위 △에이전트 비리(몸값 부풀리기 등) △연고지 이전 △구단임원의 예산 가로채기 △신인선수 선발비리 △무리한 해외구단 초청 △팬들의 폭력사태 △무료ㆍ초저가 입장권 발행까지 10개 항목에 단장들이 1~5순위를 매기도록 해 5~1점(1순위에 5점~5순위에 1점)의 점수를 매긴 결과, 심판매수사건(77점)과 승부조작(67점)에 압도적인 점수가 몰렸다. 음주운전 등 선수들의 범죄행위(34점), 구단임원의 예산 가로채기(25점)가 그 뒤를 이었다.
심판 매수와 승부조작 가담을 1ㆍ2순위로 꼽은 수도권 기업구단 A단장은 “승부조작은 스포츠의 근간인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절대 재발돼선 안 될 일”이라면서 “두 번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렸어야 했는데, 사건 당시 징계가 미흡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지방 시민구단 B단장도 “스포츠에서 공정성은 필수 요소”라며 경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이슈는 K리그 신뢰하락에 가장 큰 원인이 된다“며 엄단이 필요하단 의견을 전했다.
다만 ‘기타의견’을 통해 어느 하나라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란 의견과 함께 구단들이 되돌아봐야 할 과제를 전한 단장들도 다수였다. 경기인 위주의 조직 구성과 폐쇄성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도권 기업구단 C단장은 “경기인 출신들의 보수성과 폐쇄성은 변혁기 사회환경을 구단이 따라잡는 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경직되고 낡은 인식과 의사결정 방식은)팬들의 외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시민구단 FC안양 장철혁 단장은 “(팬들의 믿음을 저버리는)구단의 연고지 이전은 다시는 발생해선 안될 이슈”라고 강조했다.
팬들을 향한 당부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방 기업구단 D단장은 “경기장 내 언어적, 물리적, 인종적 폭력은 팬을 늘려나가야 할 K리그에서 팬 유지와 재방문을 방해하는 가장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본다”고 했다. K리그1 선두를 다투고 있는 울산 김광국 단장과 전북 백승권 단장은 설문 문항에 점수를 매기는 대신 기타의견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김 단장은 “무엇보다 무료 입장권 남발로 리그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고, 백 단장은 △구단 최고결정권자의 운영철학 확충 및 일관성 유지 △우승상금 증대 △심판 자질 향상을 우선 해결 과제로 꼽았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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