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옥상 수영장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인근에서 아시아 최초로 대형 드론 모양의 2인승 에어택시 시범 비행이 있었다. 약 2분30여초 남짓의 짧은 비행이라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싱가포르의 혁신 의지를 보여 주기에는 충분한 행사였다.
싱가포르는 예전부터 혁신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실험하고 지원하는데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선두가 되어 왔다. 2016년 세계 최초의 무인택시 시범 운행국이라는 칭호를 시작으로 지금도 대학 캠퍼스, 컨테이너 부두, 센토사 섬내 관광 단지 등에서 다수의 자율주행 차량이 시범 주행을 하고 있고 무인기를 활용한 택배서비스 등 스마트 모빌리티 시범 사업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혁신은 산업 분야에서만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올해 싱가포르의 관문인 창이 공항에는 링 도넛 모양의 대형 쇼핑몰인 주얼(Jewel)이 개장되었다. 이 주얼은 기존 쇼핑몰과는 다른 개념으로 지어졌는데, 건물 중앙의 뻥 뚫린 공간에는 세계 최고 40m 높이의 실내 폭포가 떨어지고, 전 세계에서 수입하여 식재된 3,000그루의 나무와 10만그루의 관목은 얼핏 보면 쇼핑몰이 아닌 그냥 실내 수목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한때 신개념으로 각광받았던 스트리트형 쇼핑몰을 넘어 포레스트형 쇼핑몰의 개념을 선보인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싱가포르 정부의 지원 대상이다. 배타적으로 자국의 대학 및 기업들로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에어택시 사례처럼 외국의 기업이라도 혁신적인 기술을 가졌다고 생각되면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200년 전 천혜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국제 중개 무역항으로 시작하여 제조업을 거쳐 금융과 석유 거래의 중심으로 성장했고 2000년 이후에는 전자, 정밀기계 등 신산업 육성과 카지노를 포함한 MICE 산업 육성을 통해 변신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기존 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는 조짐을 보이자 이제는 혁신적인 테크 산업을 육성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테크 산업을 성장시켜 싱가포르가 관련 분야 연구개발의 중추가 되고, 이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며 관련 일자리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의지가 강력한 만큼 행동도 재빠르다. 싱가포르는 그간 외국인 고용제한 정책을 강화해 왔으나,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바이오 및 생명공학, 핀테크 등 최신 테크기업에 한해서는 외국인 고용에 대해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서는 3년간 세금을 대폭 할인해 주고, 현지에 등록된 어느 기업이든 혁신요소가 포함된 사업에 투자할 경우 상당액의 투자세액 공제도 해준다. 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여 작년부터는 일반 소비자들이 완전 개방된 전기 소매시장에서 가장 큰 혜택을 주는 공급 회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끊임없는 혁신을 지향하고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가졌기에 새로운 테크 산업을 별다른 규제 장벽이나 큰 사회적 논란 없이 시장에 구현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러한 유인들로 인해 동남아 승차공유사업의 최강자인 그랩도 당초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현재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아세안 각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마침 한ㆍ싱 양국 정부 차원의 교류와 협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작년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 국빈 방문을 계기로 체결된 ‘4차 산업혁명 MOU’를 기반으로 내년부터는 바이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양국 공동 펀딩의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될 예정이다. 다음 주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6년 만에 공식 방한한다. 이번 정상 회담을 통해 관련 분야에서의 양국 간 협력이 대폭 강화되고 한국도 싱가포르와 같이 테크 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안영집 주 싱가포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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