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언론 “외무성 반대로 거부” 보도… 아베 “정식 외교 루트로 진행” 지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전달한 친서에 양국 간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문제와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포괄적 해결을 목표로 청와대가 총리관저와 대화에 나서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교도(共同)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의식 참석을 계기로 아베 총리와 회담했을 당시 이 같은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이는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당시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11분 간 환담에서 “필요하면 고위급 협의를 갖자”고 제안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상회담을 포함해 청와대와 총리관저 사이의 대화를 통해 실타래처럼 꼬인 양국 현안을 해결할 방안을 찾자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양 정상 간 환담 이후 “아베 총리는 (환담에서) 종래대로 외교 당국 간 협의로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문 대통령의 ‘고위급 협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친서의 내용을 전해 들은 외무성이 거부할 것을 강하게 진언했다”며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하고, 정식 외교 루트로 진행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만약 총리관저와 청와대가 직접 대화에 나서게 된다면,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국가안전보장국 국장과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 총리보좌관이 전면에 나서면서 외무성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총리관저에선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인해 청와대와 총리관저 사이의 비밀협의에 대한 불신감이 크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 일본 총리관저 사이의 비밀협상 내용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 관례와 달리 공개되면서 사실상 파기 상황에 이르렀다는 경험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18일쯤 미국을 극비리에 방문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할 수 없다’는 한국을 향해 미국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쳐온 만큼, 김 차장은 미국 고위 인사들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재차 설명하고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원인’을 일본이 제공한 만큼 한국의 일방적 양보가 아닌 일본의 태도 변화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 양측은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둔 의견도 주고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와 국민성금 그리고 화해ㆍ치유재단의 잔금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총리관저 측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의해 일본 정부가 출연한 기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있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목적 이외의 사용일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대내외에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문 의장의 제안이 청와대가 인정한 방안인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반대가 강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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