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도 찾아 “건강 상하면 안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투쟁 닷새째인 24일 급격한 건강 악화로 청와대 앞에서 몸져누웠다. 오후부터 비까지 내려 주변 여건이 악화됐지만 황 대표는 오는 27일과 다음달 3일 각각 국회 본회의 부의가 예고된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강행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꼿꼿이 앉아 버티던 황 대표는 이날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텐트에 누웠다. 추운 날씨에 장시간 노숙하면서 기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전 화장실에 갈 때 성인 2명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는 모습도 보였다. 황 대표는 전날 오후 6시쯤 텐트에 잠시 눕거나 메스꺼움을 토로하면서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당 대표 비서실장인 김도읍 의원이 전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국회 안이나 자택이 아닌 풍찬노숙은 과거 거의 없던 모습인데, 기력 소진이 훨씬 심해 걱정”이라고 했다.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당사에서 단식했다. 지난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는 국회 본청 안에서 단식했다. 한국당은 황 대표 주변에 의료인 출신 당협위원장과 현역 의원 대기 등을 통해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황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고통마저도 소중하다. 추위도 허기짐도 여러분께서 모두 덮어준다”며 단식 의지를 재차 내비쳤다. “두렵지 않다. 반드시 승리하겠다”고도 했다. 한미 방위비 특별협정 협상과 관련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23일 자신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에겐 “(단식) 시작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잘 싸워봅시다”라고 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문제 고비를 넘겼다고 단식을 멈출 뜻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연 비상 의원총회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절대 저지는 20대 국회 마지막 책무”라면서 “한편으로 협상의 끈을 놓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황 대표를 찾아 우려를 전했다. 이 총리는 황 대표와 1분 정도 대화한 뒤 취재진에 “건강 상하시면 안 되니 걱정의 말씀을 드렸다”며 “황 대표가 이렇게 어려운 고행을 하는 그 충정을 잘 안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몸을 겨우 반쯤 세운 채 “대통령에게 자신의 말씀을 잘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변의 지지자들은 이 총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정홍원 전 총리와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황 대표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당은 이날 경찰이 황 대표의 투쟁을 방해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민경욱 의원은 페이스북에 “청와대 앞 노숙농성 중인 황 대표에게 애국시민이 침낭을 건네려 하자 경찰이 빼앗았고, 황 대표가 화장실에 간 사이 사복경찰이 침낭을 걷어가려 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당 관계자가 가져온 큰 비닐봉투에 든 물품을 확인하려는 과정에서 당 관계자와 유튜버들이 몰려 항의하면서 혼잡한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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