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ㆍ공수처 등 검찰개혁 법안 패스트트랙
27일부터 자동부의 절차…여야 협상론도 솔솔
‘멱살잡이에 망치, 빠루(쇠 지렛대)까지.’
공사장이 아니라 지난 4월 국회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충돌 당시 등장한 ‘무기’들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의안과 사무실 안팎을 점거한 채 관련 법안 제출을 육탄저지 했고, 얼마나 대치가 격렬했는지 1986년 이후 33년 만에 국회의장의 경호권이 발동될 정도였죠.
이 같은 거센 반발에도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ㆍ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을 태운 패스트트랙 열차는 같은 달 30일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개월간 차근차근 달려와 마침내 선거법 개정안은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고, 검찰개혁 법안은 다음달 3일 부의를 앞두고 있어요.
물론 부의가 됐다고 해서 당장 표결로 해당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 패스트트랙 ‘급행열차’가 제대로 도착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은 상황이라고 하네요.
◇ 패스트트랙이 뭔데 이렇게 난리야?
올 한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패스트트랙은 사실 법에는 없는 단어에요. 말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빠른 길이란 의미로, 국회에선 법안의 ‘빠른 처리’를 위한 제도를 가리킵니다. 보통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차례로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만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는데요. 만약 여야가 팽팽히 대립하는 법안이라면 이 관문을 하나도 통과 못하고 마냥 묵혀있겠죠.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패스트트랙입니다. 국회법(85조의2)에는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면 합의 없이도 최장 330일(상임위 180일ㆍ법사위 90일ㆍ본회의 60일) 후엔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된다는 조항이 있어요.
◇민주당은 왜 그랬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검찰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었지만, 제1야당인 한국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을 회심의 ‘카드’로 꺼내 들었습니다. 민주당은 애초 개정에 미온적이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고리로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바른미래당ㆍ민주평화당ㆍ정의당)의 손을 잡았고, 지난 4월 4당이 함께 이 모든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입법을 추진하게 된 거죠.
◇한국당은 뭐래?
천신만고 끝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은 2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지만, 몸싸움까지 벌이며 이를 막았던 한국당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본회의에 부결이 됐더라도 표결을 위해선 해당 법안을 ‘상정’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해요. 문희상 국회의장은 또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인 검찰개혁 법안이 부의되는 12월 3일 이후 이를 본회의에 일괄 상정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날까지 여야가 합의를 해오라고도 덧붙였죠.
그러나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죠. 황교안 대표는 27일까지 8일째 단식농성으로 항의를 이어가고 있고, 한국당은 최후의 수단으로 무제한 토론인 ‘필리버스터’나 의원직 총사퇴 등도 고려하고 있다네요.
◇필리버스터는 또 뭔데?
필리버스터는 다들 기억하시죠?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 된 테러방지법 표결 저지를 위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썼던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수단인데요. 거대 정당에게 ‘쪽수’에서 밀려 투표로 법안을 막을 수 없을 때 쓰는 일종의 지연술이죠. 국내에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동료 의원의 구속 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을 이어간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52년 만인 2016년 2월 23일 국회에 다시 등장한 필리버스터는 3월 2일 당시 원내대표였던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끝으로 192시간, 9일 만에 끝났습니다. 마지막 발언자였던 이 전 원내대표는 12시간 31분이라는 국내 최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그러나 정치적인 존재감은 뚜렷하게 남겼지만, 정작 테러방지법은 필리버스터가 종료되는 날 통과되고야 말았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로 할 수 있는 건?
한국당 역시 이 필리버스터를 쓴다면 12월 10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 내 패스트트랙 법안의 표결 저지를 할 수는 있어요.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의원들이 발언을 이어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끝까지 막아내긴 힘들 것 같아요. 국회법은 무제한 토론을 거친 안건은 다음 회의에서 지체 없이 표결하도록 하고 있어서 정기국회 종료 후 임시국회가 소집된다면 해당 안건은 곧장 표결에 부쳐집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법안 숫자만큼 다시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또 다른 카드인 의원직 총 사퇴 역시 회기 중 의원이 사직하려면 국회 의결이 필요한 만큼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게다가 총 사퇴가 실제로 이뤄지더라도 여론전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패스트트랙 절차를 막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이대로 법안은 통과되겠네?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한국당(108석)과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15석)에 보수 성향 무소속 의원(4석)을 모두 더해도 127석에 불과해요. 여당인 민주당과 다른 야당의 공조만으로도 관련 법안은 처리될 수 있어요. 민주당 역시 법안 처리를 위한 의석 과반수인 148표(재적 295명)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라고 해서 마냥 속 편한 처지는 아닙니다. 당 내에선 한국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처리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와요. 늘 여야 정당이 모두 합의한 상태에서 처리해온 ‘게임의 룰’ 선거법을 합의 없이 처리했다간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단 우려죠. 또 황 대표가 단식 중인데 이를 밀어붙이는 것이 정치적 도의가 아니란 지적도 있어요.
부결 가능성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민주당(129석)과 정의당(6석) 의석을 합치면 135석으로, 민주당 출신의 문 의장과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표를 더해도 137석에 그칩니다. 11개 이상의 찬성표가 더 필요한 상황인데 바른미래당이 내부분열로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갈라지면서 표 계산이 복잡해졌어요. 또 각 의원마다 선거법 개정으로 인한 이해득실이 다르다는 점도 변수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국회에선 일단 되는 데까지 협상을 해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든 야당에 집중 협상을 제안한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러면서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12월 17일을 데드라인으로 내놨어요. 이를 위해 매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추진하고, 당 대표 차원의 협상도 모색하고 있다네요. 다만 26일에 이은 27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바깥 민심도 국회 못지 않게 팽팽합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26일 전국 성인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당 반대에도 기한 내 표결 처리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45.9%, ‘기한을 넘겨도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42.0%로 나타났어요. 둘 사이의 격차는 3.9%포인트로 오차범위(95%신뢰수준에 ±4.4%포인트) 내에 들었죠.
민주당은 끝내 협상이 결렬된다면 국회법에 따른 표결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봐요. 민주당과 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평화당과 대안신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공조를 위한 ‘4+1’ 협의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도 했죠. 이 경우 실리를 얻을 수 없는 한국당 내부에서는 조금씩 협상론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이처럼 여야 모두 합의 불발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아 막판 타결 가능성도 점쳐지는 패스트트랙 법안, 과연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여기서 잠깐
패스트트랙 탄 ‘선거법 개정안’은 어떤 내용?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지역구 225석(비례 75석)에 연동률 50%’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올해 4월 합의한 내용입니다. 지금은 의원 정수 300명 중 비례대표 의석 수가 47석인데,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하고 이를 정당득표율에 연동시키겠다는 취지죠. 반면 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내세웠습니다. 지역구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비례제 확대는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또 패스트트랙 법안엔 선거 연령 기준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내용도 담겨있죠. 법안 통과 시 내년 총선에서 고3 학생 등 유권자가 약 50만명 늘어나는 만큼 이 역시 선거 판도에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겠죠.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