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극 ‘후회하는 자들’(7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개막)은 배우 지춘성(54), 김용준(48)이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배경은 2008년, 주인공은 60세를 훌쩍 넘긴 미카엘과 올란도다. 둘은 모두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다가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로, 성전환 수술 후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올란도는 1967년 스웨덴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한 후 결혼까지 했지만 재수술을 해 다시 남성의 삶을 산다. 쉰이란 늦은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기대했던 삶이 아님을 깨닫고 있는 미카엘은 올란도와 마주해 정체성, 후회, 성적 재규정을 둘러싼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2. 연극 ‘여자만세2’(24일 서울 예술의전당 개막)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의 이야기를 통해 중년 여성이 감내해 온 희생, 딸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그린다. 다소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극이 유쾌하고 울림이 크다. 70대 하숙생 ‘이 여자’ 역의 배우 양희경(65), 성병숙(64)의 연기 덕분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이 여자’는 시어머니에게 순종적인 며느리와 꿈을 이루지 못해 자존감을 잃어가는 딸에게 충고와 위로를 건네는 역할을 한다.
연기 경력 수십 년에 달하는 중노년 배우들이 올 연말 잇따라 주연으로 연극 무대에 선다. 유려한 연기력으로 정체성에 관한 고민부터 정의, 고독, 노년의 삶 등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후회하는 자들’과 ‘여자만세2’는 최근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논의됐던 젠더 문제를 중노년 배우를 통해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후회하는 자들’의 경우 스웨덴 극작가 마르쿠스 린딘이 2006년 초연한 이후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현재까지도 공연될 정도로 관객 반응이 좋다. 한국 역시 성적 다양성과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만큼 두 중년 배우의 깊은 연기가 적잖은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여자만세2’ 역시 지난해 대학로에서 초연된 후 연극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아 온 작품으로, 양희경과 성병선 뿐만 아니라 배우 윤유선 등 베테랑 배우들이 합세해 깊이를 더한다.
올해 늘푸른연극제(원로 연극제ㆍ5일 개막) 선정작 6편의 주연도 70~80대 배우들이 맡는다. 배우 박웅(81), 이승옥(76), 김동수(71), 김경태(70) 등 주요 출연 배우들의 평균 나이만 74.5세에 달한다. 선정작들은 노배우하면 으레 떠올리는 통속극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승옥 주연의 ‘노부인의 방문’은 정의에 관한 담론을,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동명 극을 원작으로 한 김경태 주연의 ‘의자들’은 고립된 섬에 사는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해 부조리를 다룬다. 늘푸른연극제 운영위원인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는 “관객들에게 국내 연극계의 역사성과 원숙한 예술성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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