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취업자의 30%는 굳이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20년 새 8%포인트 가량 늘었다. 이른바 ‘직업 미스매치’ ‘학력 인플레’ 현상이 빠르게 심화하는 양상이다.
이들의 임금은 대졸자에 적정한 일자리보다 40% 가까이 낮았다. 이들이 취업 후 3년 이내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로 옮기는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은 23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 ‘하향취업의 현황과 특징’을 발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오삼일 과장과 강달현 조사역은 취업자의 학력이 일자리가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은 경우를 ‘하향취업’으로 정의하고, 2000년 이래 국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하향취업률 추이와 특성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대졸자 하향취업률은 30.5%였다. 2000년 1월 말(22.6%)에 비하면 7.9%포인트 높다. 이 수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인 2009년을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하향취업률 상승분 가운데 2000~08년 증가분은 0.9%포인트에 그치고, 나머지 7.0%포인트는 2009년 이래 오른 것이다. 보고서는 “이런 추세는 고학력 일자리 증가(수요)가 대졸자 증가(공급)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수급 불균형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하향취업률은 실업률이 높아지면 곧바로(1개월 시차) 따라 오르는 경향이 강했다. 대학 전공별로는 의약(6.6%)과 사범(10.0%) 계열의 하향취업률은 낮은 반면 공학(27.0%), 인문ㆍ사회(27.7%), 예체능(29.6%), 자연(30.6%) 계열은 높았다.
또 성별로는 남성(29.3%), 연령별로는 청년(29.5%) 및 장년(35.0%)의 하향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청년층은 높은 청년실업률 탓에, 장년층의 경우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각각 눈높이를 낮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향취업 대졸자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은 서비스ㆍ판매직(57%)이었다.
일단 하향취업을 했어도, 다시 능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아 가는 ‘일자리 사다리’는 원활하지 않았다. 하향취업자가 취업 후 1년 내 적정취업자로 전환하는 비율은 4.6%였고, 2년과 3년 안에 전환하는 비율도 각각 8.0%, 11.1%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하향취업 상태를 계속 유지할 확률이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상승하며 하향취업의 고착화가 심화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하향취업자의 평균임금(2004~18년)은 월 177만원으로, 적정취업자(284만원)보다 38% 낮았다. 또 대졸자가 하향취업한다고 해서 같은 직업의 고졸 취업자보다 임금을 더 받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적정취업을 한 대졸자가 학력 덕분에 12%의 임금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고서는 “하향취업 증가는 인적 자본 활용의 비효율성, 생산성 둔화를 초래한다”며 △직업교육 강화 △필요 이상의 고학력화 현상 완화 △직업간 원활한 노동이동 유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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