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여론 조사에서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경쟁력 입증
김진표 금태섭 논란이 던진 메시지 이 총리도 알고 있을 듯
윤석열 질책도 결과적으로 여권 지지층에 강렬한 인상
‘총리 대망론’ 다른 버전, 관건은 결국 집토끼 관리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연초 공개된 복수의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 진영의 선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으로 돌아가 4ㆍ15 총선 승리를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을 정도로 이 총리 본인도 고무된 분위기다. 역대로 총리들은 ‘여론조사 대통령’이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달아 왔다. 때문에 이 총리의 상승세도 다음 대선 때까지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연초 실시된 여론조사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총리가 청와대 문턱까지 갔던 전임자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예상도 하게 된다.
중도층 선점은 대선 승리의 필수 조건이다. 이념의 양극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볼 지점이 대선주자들의 이념성향별 지지율 분포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총리는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각각 24.6%와 13.1%의 지지를 받았다. 이 총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황교안 대표는 같은 조사에서 중도층과 진보층에 각각 5.7%와 2.5%의 지지를 받았다. 서울신문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총리는 중도층(36.2%)과 보수층(18.5%)에서 역시 두 자릿수 지지를 받았다. 여권 내에서 이 총리의 뒤를 잇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같은 조사에서 중도층과 보수층에 각각 7.6%와 1.5%의 지지를 받았다. 적어도 현 시점까지 이 총리가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까지 통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이 총리를 선택한 것도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요인 외에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이미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총리 측 관계자는 10일 “한국 사회는 분단의 아픔 이후 경제개발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의 가치보다 갈등의 혼란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보수층에서도) 갈등과 균열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 총리를 향한 믿음이 반영된 결과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다만 보수층까지 통할 수 있는 이 총리의 경쟁력이 향후 대권 가도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특히 여권 내부에서 말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연말 차기 총리로 물망에 올랐다 여권 지지층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는 이 총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 의원은 2017년 문 대통령 당선 직후 급히 꾸려진 인수위원회 성격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인수 작업을 무난하게 진두지휘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관료 출신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에서 종종 그의 보수적 성향이 당 내부에서 입길에 올랐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김 의원이 평소 선을 그어야 할 보수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정책까지 찬성했을 정도로 도를 넘지 않았다는 평가도 분명히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그를 중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처리에서 소신을 택했다 뭇매를 맞은 금태섭 민주당 의원 경우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다른 생각을 가진 정치인, 그 다른 생각이 상대 진영과 일면 상통하는 측면이 있을 경우 진영 내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금 여권 지지층을 휘감고 있는 흐름이다.
4선의 국회의원과 도지사, 총리까지 지낸 ‘정치9단’ 이 총리 역시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 대한 전략까지 철저히 마련해 당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일 이 총리가 검찰 인사과정에서 보인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를 강하게 질책한 것을 두고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촉’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이 총리의 질책이 결과적으로 윤 총장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있는 여권 지지층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차기 대선까지 2년 2개월 남았다. 이 총리가 원하는 ‘총리 대망론’의 다른 버전은 결국 남은 기간 ‘담을 높게 쌓고 있는 집토끼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해석이 아닐 것이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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