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23)] 호주 캠핑카 여행 1편
※연일 전해지는 호주의 대형 산불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한 달 전 시드니를 떠날 때 최악이라던 산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여 간 호주 대륙을 횡단했다. 여정에서 스쳐간 인연들, 길에서 만난 수많은 야생동물은 무사할까? 하루 빨리 사태가 마무리되고 화마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
주행 거리 2만여km,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캠핑밴으로 호주를 횡단했다. 처음이라 기대했고 몰라서 깨졌다. 초보 캠핑족의 무모한 도전, 그 리얼 버라이어티 후기.
◇표지판에 현기증이 납니다
호주는 어딜 가나 표지판이 풍년이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여서일까. 기본 그 이상으로 친절하다. 급커브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그에 따른 속도 제한 표지판이 등장한다. 40명이 사는 깡촌이라도 자부심 가득한 환영 문구가 반긴다. 해변과 국립공원 등에도 ‘이건 돼’ ‘안돼’ ‘이건 하지마’ 등 할 말 많은 호주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역시 로드킬 예방 표지판. 캥거루를 기본으로 주인공이 수시로 바뀐다. 왈라비ㆍ코알라ㆍ에키드나ㆍ웜뱃 등이 그려진 표지판이 나타나면 단단히 긴장했다. 실물 한번 직접 구경하고 싶어서.
◇제발 내 양심을 시험하지 말아줘
양심(良心)이란? 국어표준대사전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지만 무단횡단도 꽤 한 편이다. 호주에서 캠핑카 여행을 하면 자주 스스로의 양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무인 징수 시스템이 많은 까닭이다. 밤늦게 캐러밴 파크에 들어서면, 일단 자리를 잡고 내일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돈을 내란다. 넓은 대지의 국립공원에서 입장료 결재는 온라인으로 하라는 시스템이 허다하다. 불법주차 징수 요원이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오지의 주차비 정산 기계 앞에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낼까, 말까. 감시 카메라 하나 없다. 아, 이걸 노린 건가. 돈을 안 내면 양심적 가책에 시달릴 거라는 거.
◇씻지 않을 용기가 필요해
캠핑카 여행은 숙소에 대한 고민을 확실히 줄인다. 귀찮은 예약도 필요 없다. 차가 곧 침대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리다가 밤이 되면 근처 캐러밴 파크를 정해 잤다. 무계획이다 보니 허허벌판에 놓인 순간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자면 안된다. 표지판의 왕국에선 캠핑카가 주차하고 하루 묵어갈 만한 부지에, 캠핑 금지 표시를 명백히 밝혀두었다. 이때는 졸음운전 방지용 휴식 장소가 우릴 살렸다. 24~72시간 등 머물 수 있는 시간도 표시돼 있다. 단, 재래식 화장실만 덜렁 있고 세면대가 실종된 경우가 많다. 우리의 캠핑밴은 욕실 없는 미니멀리스트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목욕은? 패스다. 물티슈나 클렌징 워터로 고양이 세수를 한다. 결벽증이 있다면 호주에서 캠핑카 여행을 재고해야 한다. 반대로 여정을 마치고 나면 결벽증을 싹 고칠 수도 있겠다.
◇호주엔 벌금을 먹이는 유모가 있었다
호주 북서부를 달리던 중이었다. 뒷좌석에 있는 귤이 손에 닿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귤을 찾아 다시 벨트를 찬 그 찰나, 경찰 차와 마주쳤다. 나의 잘못이지만 재수가 많이 없었다. 운전석 옆 자리에 앉은 나에게 ‘훈남’ 경찰은 국제운전면허증을 보여 줄 것을 요구했고, 다른 경찰은 운전대를 잡은 탕탕에게 음주 측정을 했다. 뒤이어 불편한 벌금 딱지 하나를 들이민다. 피 같은 돈, 550호주달러(44만원)가 적혀 있었다. 경찰은 운전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어 1,100호주달러(88만원)가 될 수도 있었다며 자신의 아량을 칭찬하는 듯했다. 안전벨트를 풀어야 할 경우에는 꼭 차를 세워야 한다고 거듭 경고했다. 빅토리아주에 사는 경찰 친구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더니, 자신이 당한 황당한 벌금 경험을 들려주며 한마디 덧붙인다. “호주를 보모 국가(nanny state)라고 하는 거 알아?” 규칙 위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과도한 법망을 일컫는 속어였다.
◇한국에서 평생 한 것보다 오래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20여년 전 운전면허를 땄지만 초보 운전자였다. 제주에서 대형마트를 오가면서 장롱 면허를 겨우 면했다. 호주는 운전석이 오른편이다. 도로상에 ‘왼쪽 차선으로 주행하라(Drive on left)’라는 표지판이 심심하면 보인다. 나와 탕탕처럼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나라에서 건너온 운전자가 많다는 뜻일 테다. 호주의 땅덩어리는 한국의 약 77배. 하루 주행 거리가 500km를 넘기는 날도 있었다. 운전을 즐긴다고 탕탕에게만 맡길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솔선해서 운전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국의 끝과 끝을 달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대륙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늘 까마득하다. 운전대를 직접 잡기 전엔 절대 감이 안 온다.
◇비포장도로가 괴물이 되기도 한다
호주 중남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쿠버 페디(Coober Pedy)에서였다. 낙조 구경하기 좋다는 사막에 가기로 했다. 입소문이 맞았다. 브레이크어웨이즈(Kanku-Breakaways Conservation Park)는 지는 해의 붉은 기운을 받아 화성 지표면을 연상시켰다. 날 것의 풍경에 걸맞게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전망대를 향해 달리는데 탕탕이 차를 세웠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앞과 뒤, 타이어가 맛이 간 상태였다. 완전히 ‘쭈그렁방탱이’다. 휴대폰 신호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구글맵은 친절하게도 이처럼 아찔한 비포장도로까지 안내한다. 흉기 같은 돌이 많았다. 바짝 긴장할 필요까진 없으나 비포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도로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 도로가 날 해칠지, 아닐지.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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