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의 섬, 인도양의 떠오르는 휴양지…탄자니아 잔지바르
되뇔수록 감미로운 이름이다. 잔지바르(Zanzibar), 미소를 머금듯 입꼬리를 살짝 늘린다. 그런 다음 다문 입술을 가볍게 떼고 들릴 듯 말 듯 부드럽게 혀를 안으로 굴린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처럼 간지럽다. 잔잔하게 물결이 살랑거리는 것 같다. 항구로 들어서는 여객선에서 본 잔지바르의 첫인상은 딱 그랬다.
◇가상현실 같은 미로…잔지바르 스톤타운
잔지바르 항구에 내리자 봄날처럼 몽환적인 풍경은 잠시 흔적을 감췄다. 겉보기와 달리 터미널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승객의 동선도 혼란스럽다. 분명 같은 탄자니아 땅인 다르에스살람에서 배를 타고 왔는데, 외국인은 다시 입국심사대에 서야 했다. 여권 심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탄자니아에 첫발을 디딜 때처럼 시시콜콜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복잡한 입국신고서까지 작성해야 한다. 여행객 입장에선 번거롭고 의아하다.
아프리카 중동부 인도양의 작은 섬,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연방공화국의 자치령이다. 1498년 첫발을 들인 포르투갈인이 200여년간 점령했다. 그후에는 오만 왕국이 지배했고, 19세기 중엽부터는 영국령이었다. 1963년에야 독립해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이듬해 내륙의 탕가니카와 연합해 탄자니아 공화국이 된다. 약 140만명이 살고 있고,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다.
잔지바르는 페르시아어로 ‘검은 해안’ 즉, ‘흑인의 땅’이라는 의미다. 가장 큰 웅구자 섬(잔지바르 섬)은 ‘평평하다’는 뜻이다. 면적은 제주도와 비슷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오뚝 솟은 봉우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바다처럼 평평하다.
터미널을 빠져나가면 바로 구시가지인 스톤타운(Stone Town)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다. 1800년대에 돌로 지은 3~4층 높이의 주택이 미로 같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막다른 길인가 싶으면 다음 골목이 이어지고, 끝인가 싶으면 새로운 길 갈래를 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텔ㆍ카페ㆍ식당ㆍ상점ㆍ시장이 보물찾기하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화 ‘알라딘’의 배경인 아라비아의 가상 도시나, 게임 속을 돌아다니는 것같이 흥미롭다. 같은 듯 다르고 뒤죽박죽이면서도 정돈돼 있다. 처음엔 길을 잃을까 걱정하다가도 곧 익숙해진다. 무작정 걷다 바다가 보이거나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가 나타나면 거기가 스톤타운의 끝이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깔끔하고 산뜻하기만 하다면 잔지바르가 아니다. 건물 외관은 전체적으로 흰색에 가깝지만 일부는 페인트칠이 벗겨졌고, 더러는 이끼와 물때 자국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낡았지만 흉하지 않고, 빛 바랜 파스텔 색감이 오히려 신비하고 고풍스럽다.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육중한 대문도 흥미롭다. 커다란 아라비아식 대문에 인도식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고, 쇠로 만든 장식물이 뾰족하게 박혀 있다. 코끼리의 공격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아프리카(스와힐리) 문화에 유럽, 아랍,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과 장식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레디 머큐리의 집, 그리고 노예시장
낯설기만 한 스톤타운에서 한국인의 관심을 끄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세계적인 록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집이다. 구글지도에서 ‘프레디 머큐리 하우스’를 검색하면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현재 호텔(템보하우스)로 사용되고 있어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다. 대문만 닫으면 외부와 단절되는 구조여서 여행객은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탄자니아 관광청의 협조로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봤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머큐리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가 생활한 3층 꼭대기 방 입구에는 별도로 ‘프레디 머큐리’라는 문패가 영문으로 적혀 있다. 하룻밤 숙박료는 약 20만원으로 다른 방보다 더 비싸게 받는다.
그의 명성 때문에 외국 관광객은 꼭 찾는 명소지만 현지에선 그다지 자랑으로 내세우는 분위기가 아니다. 머큐리는 인도계 영국인이다. 그가 태어난 1946년 잔지바르는 영국령이었고, 그의 부친이 총독부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스톤타운의 다른 명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만의 술탄(왕)이 포르투갈인을 추방하면서 세운 요새 ‘올드포트’나 왕궁은 지금도 웅장한 외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관리 상태는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과 다름없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1840년 무렵 오만제국의 사이드 빈(Said bin) 술탄은 잔지바르의 매력에 반해 수도를 무스카트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1888년 완공한 궁전은 인도와 아라비아의 전통에 포르투갈 양식을 결합해 ‘불가사의한 집(House of Wonders)’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정부 청사와 박물관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보수 공사 중이다.
머큐리 생가와 함께 잔지바르 여행객이 꼭 가는 곳이 옛 ‘노예시장’이다. 잔지바르는 동부 아프리카 최대 노예 무역항이었다. 대륙에서 아랍 노예 장사꾼들에게 붙잡힌 이들은 케냐의 몸바사,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등 인도양 항구에서 대기했다가 잔지바르로 이동해 아랍ㆍ페르시아ㆍ인도 등지로 팔려 나갔다. 스톤타운의 노예시장 박물관에는 당시 노예를 가두었던 지하 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채광과 통풍 시설이라곤 지나가는 사람의 발목 정도만 보이는 벽돌 구멍이 전부다. 이 좁은 방에 50~70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천장은 허리를 펴기 힘들 정도로 낮고, 바닥에는 발목을 묶었던 쇠사슬이 뒹굴고 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맞닥뜨린 야만의 광경에 숨을 쉬기 힘들다. 차마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다. 무거운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서는데 때마침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졌다. 굵은 빗물이 슬레이트 지붕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잔지바르의 노예 무역은 1842년 영국인에 의해 폐지됐다. 노예 박물관 관람객도 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엄청난 노예를 아메리카로 수출했던 그 유럽인의 후손이다. 최대 노예시장이었던 자리에는 잔지바르의 ‘흑역사’를 속죄하듯 웅장한 성공회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 마당 귀퉁이에 쇠사슬로 목줄이 채워진 형상의 ‘잔지바르 노예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향신료의 섬, 휴양의 섬 잔지바르
아프리카 최악의 노예 무역항이라는 오명과 대조적으로 잔지바르는 향신료의 섬이다. 육두구ㆍ계피ㆍ후추ㆍ정향ㆍ바닐라 등 300여가지 향신료 작물이 자생하거나 재배된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체험 농장도 10여곳 있다.
체험 농장의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 우선 입장료나 체험 비용이 없다. 가이드의 안내로 농장으로 들어선다. 농장이라고 하지만 밭고랑도 없고 재배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간격으로 야자수가 심겨진 야생의 풀숲이다. 망고ㆍ바나나ㆍ코코넛 나무가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궁금증이 생길 무렵, 안내인이 풀 하나를 뜯어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억새와 비슷한데 상큼한 향을 풍기는 레몬그라스다. 차로 우리거나 요리에 첨가하고, 화장품 재료로도 이용한다. 후추 열매와 잎, 계피 뿌리와 껍질을 차례로 잘라 맛도 보고 냄새도 맡는다. 올드스파이스 잎은 남성 스킨로션 향 그대로이고, 붉은 아나토 열매는 천연화장품이다. 아이스크림에 첨가되는 바닐라는 6개월 이상 자라야 수확할 수 있는 귀한 재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재미있는 건 소개하는 작물이 늘어날수록 시연 인원도 점점 불어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따라붙은 청년들이 야자 잎으로 모자나 넥타이를 만들어 씌워주고, 하비스커스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 준다. 아나토 열매로 연지곤지 찍고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나무꼭대기까지 올라 코코넛을 따서 달콤함을 선사한다. 함정이라면 얼굴 화장 시연까지 소년 티를 갓 벗은 남성이 맡는다는 것. 여성이 외지인에게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무슬림 사회의 현실을 깨닫는다. 시연이 끝나면 농장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비누, 향초, 향신료 등이 진열된 판매대 앞으로 안내한다. 강요하지 않지만 그 정성에 탄복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잔지바르는 최근 한국인에게도 신혼여행지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섬의 북서부 해안에 고급 리조트와 휴양지가 몰려 있다. 스톤타운에서 1시간30분 거리의 켄드와(Kendwa) 해변은 인도양의 아름다운 일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섬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는 포장이 돼 있지만, 이면 도로는 아직 비포장이다. 큰 도로에서 켄드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도 흙길이었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10분가량 덜컹거리며 시달린 후, 켄드와에 도착하면 지금까지 보아 온 잔지바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독립된 숙소로 구성된 고급 리조트 앞으로 새하얀 모래해변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잔잔한 인도양 바다가 햇살에 반짝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적도의 바다와 하늘로 번지는 노을이 유난히 부드럽다. ‘선셋 크루즈’에 나선 유람선은 이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바다를 누빈다. 해변을 거니는 연인과 가족도 이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고 평화롭다.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도 인도양의 낭만으로 물든다. 어둑한 기운과 함께 잔지바르의 향기가 바람에 묻어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로 꽉 채워지는 해변이다.
◇잔지바르 여행 정보
▲한국에서 잔지바르까지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은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는 에티오피아 항공이다. 인천~아디스아바바를 주 5회 운항한다. 잔지바르 공항까지는 환승 대기 시간을 포함해 약 18시간 걸린다. ▲탄자니아 실링이 공식 통화지만, 관광이 주요 산업인 만큼 달러도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잔지바르의 물가는 현지 소득 수준(1인당 약 1,000달러)에 비하면 아주 비싼 편이고, 한국과 비교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 잔지바르 피자를 비롯해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스톤타운의 레스토랑 메뉴는 대부분 10달러가 넘는다. ▲잔지바르의 기온은 연중 21~33도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겨울에 해당하는 6~9월로 최고기온이 30도 이하로 떨어진다. ▲하나투어가 2~5월 매주 월요일 출국하는 탄자니아 9일 상품을 판매한다. 2인 이상 출발하며 5성급 멜리아 호텔에 투숙한다. 세렝게티 사파리 후 잔지바르 관광과 휴양이 포함된 상품으로 가격은 729만~759만원이다.
잔지바르(탄자니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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