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것이므로 사람이 변하면 말도 변한다.
앞의 문장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를 두 번 썼는데, 이것을 ‘인간’이라 바꾸어도 뜻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인간(人間)’은 말 그대로 사람(人)이 존재하는 곳(間), 즉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뜻했다. ‘속세’와 유사한 의미이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인 ‘인간’이 들어오면서 ‘인간’은 원래의 뜻을 거의 잃어버리고 ‘사람’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식 한자어는 한반도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어나 전통적 한자어를 급속히 대체하였다.
본뜻과는 달리 어감이 변한 예도 있다. 오늘날 ‘인간’을 지칭어로 쓰면 부정적 의미가 된다. “저 인간은…”라고 했을 때 우리는 화자가 그 대상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챈다. 한편 어감이 좋아지는 예도 있다. 전통적으로 동물 ‘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고, 접두사 ‘개-’는 부정적이거나 나쁜 의미를 강조하는 경우에 동원되는 형태였다. 개살구, 개고생, 개차반 등등. 최근의 유행어이긴 하지만 ‘개’가 긍정적 강조에도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이득, 개좋음, 개멋짐 등등.
‘인간’이 부정적인 어감으로 변하고 ‘개’가 긍정적 어감으로 변하는 현상은 인간사회가 피폐해지면서 개인주의 문화가 커지고 애견문화가 정착되는 추세로 보아 앞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없진 않다. “인간은 우리를 지칭하는 소중한 표현입니다”라고 선전한다고 해서 “저 인간!” 소리를 들은 사람이 행복해질 리는 없다. 누군가가 나서서 “개는 나쁜 의미로만 사용합시다”라고 계몽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의미 변화 현상은 인간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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