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차량 가액 150만원 넘으면 양육비 지원서 제외
비현실적 규정 속 ‘배출가스 규제’ 차량에 족쇄
“차 바꾸지 못하고 타지도 못 하게” 규정 개정 촉구
서울에서 홀로 자녀를 키우는 A(35)씨는 최근 자동차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2009년에 출고된 경유차인데 올해부터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규제가 시행돼 서울 일부 지역에서 차를 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렇다고 차를 바꾸면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에서 제외, 정부가 주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A씨는 “아이를 데리고 학원을 오가야 하고 일 때문에도 필요한데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가 최근 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며 한부모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1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중위소득 52% 이하인 한부모가족(부자ㆍ모자ㆍ미혼모자ㆍ조손 가족ㆍ미혼모)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규정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만 18세 미만 자녀 1명당 양육비가 월 20만원이고 중ㆍ고등학생 자녀는 1명당 학용품비가 추가로 연 5만4,100원 지원된다. 하지만 조건이 그리 만만치 않다.
한부모가족이 가장 어려움을 표하는 건 차량 기준이다. 보유하고 있는 차량은 소득으로 잡히는데 배기량, 연식, 가액(물건의 가치에 상당한 금액)에 따라 소득 인정 비율이 달라진다.
우선 생계유지를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되는 생업용 자동차로서 배기량이 1600㏄ 미만이어야 한다. 연식은 10년 이상이거나 10년 미만일 경우엔 차량 가액이 150만원 미만이어야 조건을 충족한다. 이 기준을 벗어나면 가액의 100%까지 소득으로 인정돼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차량 기준 자체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올해부터 경유차 배출가스 규제까지 더해져 한부모가족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정부는 서울 도심지역부터 배출가스 5등급 경유차 진입을 제한한다. 어기면 과태료 25만원을 내야 한다. 현재 양육비를 지원받고 있는 한부모가족이 보유한 차는 기본적으로 연식이 10년 이상이다. 상당수가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추진된 최근 2, 3년 사이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만큼 중위소득 기준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최저월급은 179만5,310원(주 40시간)인데,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기 위한 2인 가족 소득 기준은 이보다 낮은 155만5,830원 이하다. 황은숙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차량 기준 때문에 서울에 갈 때는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 다니는 한부모들도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양육비 지원 대상에서 빠지면서 오히려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는 호소도 나온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도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현재 중위소득 52%가 넘으면서 60% 아래인 한부모가족에 대해선 우선 비급여성 복지만 확대한 상황”이라며 “차량 기준도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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