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최순실 저격수’ 노승일…‘양승태 사법농단’ 폭로 판사들
한진일가 ‘갑질’ 알린 박창진…불법사찰ㆍ산재은폐 밝힌 인물들도
정계 진출에 고발 순수성 의심도…두 가지 시선, 국민 선택 주목
※다가올 4·15 총선은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장을 던진 이들의 삶과 이력이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인데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총 1,948명이 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정치권 또는 입법ㆍ행정 분야의 경험이 거의 없는 후보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좀처럼 여의도와 인연이 없어 보였던 비주류 인사들이나 자신만의 스토리로 다양한 가치를 대변할 일꾼들이 잇달아 금배지를 향해 뛰고 있습니다. 4월, 어떤 후보들이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활약할지 살펴볼까요?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라 불리는 사람들, 내부고발ㆍ공익제보자를 뜻하죠? 호루라기를 불어 경각심을 주듯 사회에 경고를 한다고 해서 이런 별명을 얻게 됐는데요. 과거에는 조직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들이 이후 배신자로 찍혀 업계에서 퇴출되고 결국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지는 등 마지막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인식이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대중이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호응하듯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양지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그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만큼, 이번 4·15 총선을 계기로 진실 규명을 위해 조직 안팎의 문제점들을 폭로했던 내부고발ㆍ공익제보자들이 정계 진출을 시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무소속으로 광주 광산을 출마를 선언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대표적입니다. 이른바 ‘최순실(최서연) 저격수’로 불리죠. 과거 최씨의 측근이었지만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국회 국정조사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된 지 2년 남짓 됐을 무렵 노 전 부장은 광주로 거처를 옮기고 식당을 열어 지역 구민들과 교류하며 기반을 다졌다고 하는데요. 그의 출마 이유 역시 “적폐청산을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하는군요.
국정농단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역시 대한민국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호루라기 역할을 했던 전직 법관들을 차례로 섭외하고 있는데요. 판사가 법복을 벗은 지 오래되지 않아 국회로 진출하는 것을 두고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소신과 개혁의지를 높게 사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먼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이탄희 전 판사가 있죠. 이 전 판사는 법원 내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법원행정처에서 2017년 심의관을 맡았는데요. 여기서 법관들을 뒷조사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이후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판사들에 대한 동향보고 업무를 거부, 사직서를 제출하고 법복을 벗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은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입당 제안을 수 차례 고사했던 이 전 판사는 “21대 국회에서 사법개혁을 핵심과제로 삼아달라”는 요청을 민주당이 수락하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는데요. 사법농단 1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결심을 굳혔다고 하는군요.
민주당은 또 사법농단 관련 의혹을 폭로한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이수진 전 부장판사도 영입했습니다. 이 전 부장판사는 201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인사 전횡을 비판하는 공개토론회 개최를 막아라’는 법원행정처 지시를 거부한 후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 전 부장판사는 “개혁대상인 법원이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어 폐부를 도려내기란 쉽지 않으므로 삼권분립의 또 다른 축인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외에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정책보좌관도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과천ㆍ의왕에 출마를 선언했는데요. 장 전 정책보좌관은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실 주무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청와대의 지시로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폐기, 이후 재판에서 이 같은 내용과 함께 “입막음용으로 관봉으로 묶은 5,000만원을 전달받았다”고 폭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당에서 영입한 이종헌씨는 2014년 농약 비료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회사의 전국 7개 농장에서 2009년부터 무려 5년간 산업재해를 은폐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용노동부에 공익신고를 했는데요. 조사 결과 총 24건의 산재 은폐 사실이 드러나 회사에는 1억5,480여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이후 대기발령ㆍ부당전보ㆍ승진누락 등 고초를 겪었죠. 2017년 대선 때에는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으로 자문을 맡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한국당의 삼고초려 끝에 마음을 정했다고 하는군요.
정의당에서는 그간 당내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해온 박창진 전 대한한공 사무장이 비례대표로 총선에 뛰어듭니다. 박 전 사무장은 한진가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을 촉발시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2014년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이자 내부고발자로 “직장 갑질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내부고발자는 사회에선 의인으로 평가 받을 수 있지만,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이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내부고발의 순수성에 오점을 남기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부당한 상황에 맞서 조직내 불이익과 사회의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화를 이루고자 뛰어든 이력이 있는 만큼 실제 국회의원 된다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두 가지 시선을 받고 있는 내부고발자들, 과연 국민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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