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 긴급 회견 열어 종로 출마 선언
‘예비 대선’ 현실화… 민주당도 긴장 역력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장고 끝 선택은 결국 ‘종로’였다. 황 대표가 4ㆍ15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7일 전격 선언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명실상부 이번 21대 총선 최대 승부처다.
종로 혈투는 2022년 대선주자 지지도 1, 2위를 다투는 이 전 총리와 황 대표의 정치적 운명뿐 아니라 원내 1당을 노리는 민주당과 한국당에도 자존심이 걸린 승부다.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을 셋이나 배출한 종로는 ‘정치 1번지’라 불릴 정도로 상징성이 큰 지역구다. 이 선거구 승패가 전체 총선 판도를 좌우할 수 있다. ‘대선 전초전’과도 같은 종로 선거 결과에 따라 2년 뒤 치러질 대선 지형도 요동칠 공산이 크다.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당초 7일 전체회의에서 황 대표의 종로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던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6일 밤 돌연 10일로 회의를 연기하면서, 황 대표가 ‘종로 출마, 다른 수도권 지역 출마, 불출마’란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탓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가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출마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에 당 안팎에선 ‘리더십 위기’를 넘어 ‘총선 필패’ 우려까지 커졌다.
거취 정리가 늦어질수록 당내 인적 쇄신 동력이 떨어지고, 총선 판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황 대표는 결국 정면돌파를 택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종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다”며 “자랑스러운 종로를 반드시 무능정권, 부패정권 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을 종로에서 시작해 서울, 수도권,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며 “무능정권, 부패정권, 오만정권의 심장에 국민 이름으로 성난 민심의 칼을 꽂겠다. 대한민국의 찬란한 성공신화를 무너뜨리는 문 정권의 역주행 폭주를 최선봉에서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다.
돌고 돌아 황 대표를 상대로 맞이하게 된 이 전 총리는 황 대표 출마 선언 후 “종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총리 측은 “예비대선을 치르게 됐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시대의 갈등과 분열을 서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들어 황 대표 주변에서는 종로보다 당선 가능성이 큰 곳으로 가거나, 아예 불출마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종로에서 패배라도 할 경우 대선주자로서 입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특히 이 전 총리가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하고 황 대표를 향해 ‘올 테면 와봐라’라고 자극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민주당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말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출마를 선언하려면 이 전 총리보다 먼저 했어야 하는데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말도 나왔다.
황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것 같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종로 출마가 이 정권의 나쁜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라 걱정하는 분이 많은 것을 잘 안다”며 “그러나 종로 선거는 개인 후보 간 대결이 아니다. 나라를 망친 문 정권과 이 정권을 심판할 미래 세력의 결전”이라고 했다. 사전 배포된 기자회견문 초안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종로 빅매치를 한국당의 ‘정권 심판론’ 상징으로 삼겠다는 각오였다.
황 대표의 결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황 대표가 패배를 우려해 종로를 피했다면 중진급 험지 차출은 물론, 대구ㆍ경북(TK) 등 강세 지역 물갈이에 제동이 걸려 한국당 총선 전략이 흐트러질 게 분명했다. 또 선거 기간 내내 따라붙게 될 ‘겁쟁이’ 프레임이 전체 판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컸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종로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황 대표는 리더십이 붕괴되고, 황 대표에게 종로 출마를 권한 공관위가 초반부터 권위를 상실해 공천 작업이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이제라도 바로잡아 다행”이라고 했다.
출마 발표 시기나 현재 스코어 모두 일단 황 대표가 이 전 총리에게 도전장을 낸 모양새다. S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달 28~30일 종로구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전 총리 지지율은 53.2%로, 황 대표(26.0%)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종로는 평창동, 삼청동 등 부촌이 속해있어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으로 분류됐지만 정세균 국무총리가 승리한 2012년 19대 총선부터는 줄곧 민주당 계열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긴 2012년 대선 때도 종로만큼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득표율이 51.4%에 달했다. 가장 최근 전국 단위 선거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64.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럼에도 보수층이 황 대표에게 결집하고, 총선 전 중도ㆍ보수통합이 성사돼 중도층까지 흡수할 땐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게 한국당의 기대다. 그간 황 대표와의 승부에 자신만만해했던 민주당도 이날 막상 맞대결이 현실화하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 관계자는 “이미 출마지를 놓고 우왕좌왕하면서 종로에 걸맞은 지도자, 대선주자로서의 품위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니냐”면서도 “황 대표가 여론의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가능성도 여전하다”고 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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