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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 무엇?] ‘기생충’의 연교가 올라 탄 ‘믿음의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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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 무엇?] ‘기생충’의 연교가 올라 탄 ‘믿음의 벨트’

입력
2020.02.12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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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기택 일가의 박 사장 저택 침투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는 장면. ‘믿음의 벨트’만 믿었던 연교가 실은 철저히 당하는 장면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 일가의 박 사장 저택 침투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는 장면. ‘믿음의 벨트’만 믿었던 연교가 실은 철저히 당하는 장면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말 만나보시겠어요?”

“아임 데들리 시리어스(I'm deadly seriousㆍ나 정말 진지해요).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 연결, 이게 베스트인거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에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출신 미술학도라 속인 기정(박소담)과 이를 믿는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주고받는 대화다. ‘기생충’ 초반부의 압권은 기택(송강호) 일가가 차례차례 박 사장(이선균)네 저택에 입성하는 과정.

기정은 이 대화 끝에 아버지 기택과 어머니 충숙(장혜진)을 박 사장네 운전기사와 가정부로 취직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기택이 벤츠 전시장에서 고급 차를 익히기 시작해 기존 가정부 문광(이정은)에게 결핵 누명을 씌우는데 성공하기까지, 영화상 러닝타임은 7분 정도. 이 시간을 떠받치는 건 날카롭고 긴장감 넘치는 현악기 선율이다. 치밀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운 기택 일가의 계략이 과연 성공할까,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런데 이 음악은 정통 클래식 곡이 아니다. 음악감독 정재일이 만든 ‘페이크(가짜) 클래식’이다. 곡 제목도 연교의 대사에서 따온 ‘믿음의 벨트’다. 정재일은 “바흐가 들었다면 깜짝 놀랄 엉터리 바로크 음악”이라 말했다. 페이크 클래식은 기택 일가의 페이크 전략을 상징한다.

2011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공연된 오페라 ‘로델린다’에서 로델린다 역을 맡은 배우(가운데)가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연인(Mio caro bene)’을 부르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2011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공연된 오페라 ‘로델린다’에서 로델린다 역을 맡은 배우(가운데)가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연인(Mio caro bene)’을 부르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공교롭게도 진짜 클래식 음악은 충숙마저 저택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을 때 나온다.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다. 1725년 선보인 오페라 ‘로델린다’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왕국의 왕비 로델린다가 남편의 왕좌를 노리는 세력에 맞서 싸워 행복을 찾는다는 줄거리다. 오페라 평론가 유정우 박사는 “기택 일가 모두가 박 사장 집에 침입하는데 성공한 뒤부터 진짜 클래식이 나온다는 건, 기택 일가가 기생을 넘어 계층상승을 이뤘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들려주는 ‘로델린다’의 첫 곡은 ‘용서받지 못할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Spietati, io vi giurai)’다. 왕비 로델린다가 죽은 남편과의 신뢰를 지키고 아들에게 남은 사랑을 바치겠노라 다짐하는 노래다. 영화에서 가정부 충숙이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과일을 가져다 주며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에 쓰였다.

영화 막바지 생일파티의 칼부림 장면에선 로델린다의 또 다른 곡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 bene)’가 나온다. 오페라에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왕을 다시 만난 왕비가 몹시 기뻐하며 부르는 곡이다. 정작 영화에서 연교는 박 사장을 잃고 기절해버린다. 음악은 그렇게 영화 ‘기생충’ 속에 스며들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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