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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완벽한 사람만 해야 하나요?” 최영미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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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완벽한 사람만 해야 하나요?” 최영미의 질문

입력
2020.02.11 17:37
수정
2020.02.11 19: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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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영미 시인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단이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시스템을 깨기 어려운데, 젊은 여성 작가들이 용기 있게 문제제기 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구나 싶어 무척 고무됐어요. 2016년의 미투 고발이 없다면 가능했을까요? 제가 (문단에) 약간의 균열을 냈구나 싶어 뿌듯했고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 싶었습니다.”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찻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영미(59) 시인은 최근 발생한 이상문학상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나 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알려졌다시피 최 시인은 지난 2017년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시 ‘괴물’을 발표, 문단의 오래된 추문을 고발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이후 고 시인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가 최 시인의 손을 들어주고 고 시인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3년여간의 법정 다툼은 막을 내렸다.

홀가분해진 최 시인은 2005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시집 ‘돼지들에게’의 개정증보판을 들고 돌아왔다. 신작시 3편을 추가하고 일부 시들을 다듬어 자신이 지난해 설립한 이미출판사에서 냈다.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신작시 3편 제목은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ㅊ’이다. 이 중 “좀도둑도 살인자를 고발할 수 있고/살인자도 살인자를 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자격’은 미투 과정에서 들은 ‘왜 하필 최영미냐’는 항간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쓴 시다. “내가 미투를 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들 했어요. 그러면 당신들이 하지 그랬어요. 저보다 훌륭한 이들이 하지 않아 제가 한 거예요. 미투의 자격이 따로 있나요? 완벽한 사람만 미투 하는 거 아니잖아요.”

최 시인은 위선적 지식인을 돼지에 비유한 시 ‘돼지들에게’도 새롭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는 시의 한 대목을 두고 ‘진주’가 최 시인을 뜻한다는 얘기가 돌아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많은 분들이 ‘왜 진주를 줬냐’고 꾸짖었지만, 저는 ‘왜 진주를 달라고 하느냐’고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시각으로 제 시를 다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최 시인은 “이제는 정말 시 자체로 평가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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